오늘날 한국 반도체 산업은 세계 최정상에 서 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작은 ‘절대 불가능’과 ‘전면 반대’라는 벽에서 출발했다.
현대전자가 이천에 반도체 공장을 세우려 했던 땅은 절대농지 3만 평이었고, 삼성전자가 선택한 부지는 수원에 있는 그린벨트 3만 평이었다. 두 기업 모두 법과 여론, 관료 조직으로부터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반도체라는 산업 자체가 생소했고, 성공 가능성은 회의적으로 평가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결단을 요구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직접 허가라는 정치적 결단이 내려지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첫 문이 열렸다. 훗날 수출과 안보, 산업 구조 전체를 바꿔놓을 선택이었지만, 당시에는 모험 그 자체였다. 삼성 이병철회장은 산업의 쌀이며 21세기를 개척할 산업혁신의 핵인 반도체를 개발해야 한다고 판단해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않았다. 특히 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자기 자금으로 KTC를 인수했고, 강진구 사장을 삼성전자 사장으로 선임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매출은 300억 원 수준, 연간 이자 비용만 1억 원에 달해 정상적인 자금 운용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래를 선택했다.
삼성반도체 기술진은 1983년 11월, 세계에서 3번째로 64KD램을 개발해냈다. 일본이 20년 걸려 해낸 일을 불과 1년 안팎의 기간 안에 해낸 것이다. 삼성은 또 1984년 10월엔 256KD램을 독자적으로 개발해냈다. 이후 삼성의 반도체는 IBM PC에 탑재되는 등 삼성의 반도체는 세계시장에서 승승장구했고 오늘날 세계 최고 반도체 생산기업이 됐다.
삼성전자는 단 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였다. 이 선택은 훗날 ‘삼성 반도체 신화’의 출발점이 된다.
현대전자의 길도 만만치 않았다. 현대전자는 내수보다 수출용·산업용 전자로 방향을 잡았다. 정주영 회장은 IBM 회장을 본인이 초청해서 직접 한복 차림으로 접대했고, 결국 합작의 문을 열어냈다. 단순한 기술 이전이 아니라, 신뢰와 기개로 맺은 파트너십이었다.
그 결과 현대전자는 컬러 모니터 납품권을 획득했고, 이 모니터는 훗날 HDTV의 원조 기술로 평가받는다. 한국 전자산업이 ‘조립’의 단계를 넘어 ‘표준’의 문턱에 들어섰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는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이른바 ‘빅딜’이 추진되며 산업 구조 재편이 시작된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김우중 회장을 중심으로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이 재편 대상이 되었다.
구본무 회장은 LG반도체를 현대에 현금 2조 원에 매각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는 기업사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 구조조정이었다. 이후 현대그룹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며 현대전자를 매각하려 했고, 먼저 LG에 인수를 타진했으나 거절당한다. 그때 손을 든 기업이 SK였다. 그렇게 인수된 현대전자가 오늘날의 SK하이닉스로 다시 태어났다. 위기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이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모든 역사는 한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산업은 허가로 시작되지만, 미래는 결단으로 완성된다. 반대가 컸을수록 도전은 컸고, 불가능해 보였기에 성취는 더욱 위대했다.
한국 반도체의 역사는 단순한 기술 발전사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읽은 기업가의 용기, 국가적 결단, 그리고 사람과 기술이 함께 만든 서사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경쟁력은, 그 시절 “무모하다”는 말 속에서도 한 발을 내디딘 선택들의 총합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다음 산업 앞에서, 과연 다시 한 번 그때처럼 결단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미래는 준비된 자의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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