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라는 가수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광화문 네거리의 낙엽이나 옛사랑의 아련함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그의 전설이 시작된 지점에는 뜻밖에도 ‘죽음’과 ‘이별’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1983년 세상에 나온 이문세 1집의 타이틀곡 <나는 행복한 사람>은 그 찬란한 제목 뒤에 삶의 가장 시린 단면을 숨기고 있는 노래다.
죽음의 문턱에서 길어 올린 '생의 찬사'
이 곡을 쓴 작곡가 오동식이 영감을 얻은 곳은 역설적이게도 벽제 화장터였다. 누군가의 삶이 한 줌의 재로 화해 바람에 흩어지는 광경, 그 지독한 상실의 현장에서 그는 인간의 유한함을 목격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그는 그곳에서 '망각'과 '떠남'의 불가피함을 보았다. "잊혀질 땐 잊혀진대도, 떠나갈 땐 떠나간대도"라는 가사는 단순한 연인 간의 작별 인사가 아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맞이해야 할 존재의 소멸을 담담히 수용하는 철학적 체념에 가깝다.
- 왜 '행복'을 노래했는가?
가장 슬픈 장소에서 탄생한 노래가 왜 하필 '행복'을 말하고 있을까? 작곡가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허무 앞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가치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 그 자체다. 비록 내일 내가 세상에서 잊히고 그대 곁을 영영 떠나게 될지라도, 지금 이 순간 창가에 앉아 그대를 떠올릴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 생은 충분히 가치 있다는 역설이다.
이 노래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화려한 수식어 대신 '지금 여기 존재하는 사랑'에 대한 가장 겸손하고도 강력한 긍정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이문세를 '가수'로 세운 운명적 선율
당시 이문세는 촉망받는 가수라기보다 재치 있는 입담을 가진 유망한 MC에 가까웠다. 만약 이 곡이 없었다면, 우리는 '가수 이문세'라는 거장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오동식의 깊은 통찰이 담긴 멜로디는 이문세 특유의 담백하고도 서정적인 보이스를 만나 비로소 완성되었다.
슬픔의 토양 위에서 피어난 이 밝은 노래는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이문세는 비로소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행복한 사람>은 우리에게 묻는다.
삶의 끝이 허무일지라도,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떠올리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화장터의 연기 속에서 피어오른 이 역설적인 고백은, 오늘도 우리에게 일상의 평범한 사랑이 사실은 가장 위대한 구원임을 나지막이 읊조리고 있다.
김창권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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