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무죄를 먼저 외치는 자의 불안
이상하다. 아무도 공식적으로 “마두로 다음은 이재명”이라 말하지 않았는데, 여권은 집단으로 분노한다. 허위 선동이라며 흥분하지만, 정작 국민이 왜 그런 말을 꺼내는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억울하다며 고함치는 모습이 꼭 시험지 채점 전부터 “나는 컨닝 안 했어요”라고 외치는 학생 같다. 안 찔렸다면 이렇게 시끄러울 이유가 없다.
Ⅱ. 유아적 발상의 국제도덕 교실
미국의 마두로 체포를 두고 여권 주변에서는 국제법 교과서가 갑자기 열렸다. 주권, 인권, 평화가 줄줄이 소환된다. 감동적이다. 다만 국제정치는 도덕 수행평가가 아니다. 러시아는 전쟁 중이고, 중국은 패권을 숨기지 않으며, 미국은 힘의 논리를 노골화한다.
이 현실 앞에서 “원래 그러면 안 된다”라는 말은 교과서적 근시안이다. 마두로 체포는 옳고 그름 이전에, 세계가 이렇게 돌아간다는 경고음이며 약육강식의 논리는 수천 년 전부터 이렇게 돌아갔다.
Ⅲ. 독재의 첫 문장은 늘 국민
마두로 정권은 자신들을 ‘국민주권정부’라 불렀다. 놀랍지 않다. 독재자는 늘 국민을 입에 달고 산다. 권력 집중은 ‘개혁’이 되고, 사법 장악은 ‘정상화’가 되며, 언론 통제는 ‘책임 강화’로 포장된다. 이재명 정권도 다르지 않다. 모든 권력은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국민이 권력을 견제하려 들면 갑자기 ‘적’이 된다.
Ⅳ. 한때 부자였다는 죄
베네수엘라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석유를 쥐고 있었고, 1980년대엔 한국보다 잘 살았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재정을 녹였고, 권력 부패는 제도를 좀먹었으며, 사법 붕괴는 마지막 안전핀을 끊었다. 미국과 등을 지고 중국을 택한 외교는 고립으로 돌아왔고, 국가는 마약 범죄의 통로가 됐다. 대통령이 국제 범죄 혐의로 체포되는 장면은 국가 실패의 종합 세트였다.
Ⅴ. 우리는 정말 다른가?
이재명 민주당 정권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면들은 겹친다. 세수는 줄어드는데 공짜 복지는 늘고, 기업은 숨이 막히는데 규제는 정의의 이름으로 증식한다. 대법관 증원은 개혁이라 하고, 사법부가 말을 안 들으면 구조를 바꾸면 된다는 식이다. 언론을 ‘기득권’이라 손가락질하고, 공무원은 휴대폰부터 관리 대상이 된다. 삼권분립은 헌법의 원리라기보다 정권 운영에 불편한 옵션처럼 취급된다.
Ⅵ. 부패가 일상이 될 때
공천 헌금, 금품수수, 측근 비리 의혹이 터져도 놀라지 않는다. 뉴스가 아니라 일기예보다. 문제를 제기하면 검찰 탓이고, 수사를 하면 정치 탄압이다. 사법부가 판단하면 ‘개혁 대상’이 된다. 이 순간 권력은 늘 피해자다. 베네수엘라도 이랬다. 부패를 부정하는 순간, 부패는 제도가 된다.
Ⅶ. 반미는 자유, 책임은 회피
정부 산하 위원장이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마두로 체포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개인의 자유라면 그럴 수 있다. 다만 정부 기구 책임자라는 사실이 문제다. 반미는 멋있고, 외교적 파장은 남이 책임진다. 일부 언론은 베네수엘라를 “배울 점이 있는 나라”로 포장하고, 여권 핵심 인사의 가족은 “사법개혁의 모델”이라 극찬한다. 독재와 몰락을 다큐가 아니라 참고서로 삼겠다는 발상, 이것이 블랙코미디가 아니면 무엇인가.
Ⅷ. ‘재메수엘라’는 진단서다
‘재메수엘라’는 욕이 아니다. 권력 독점, 사법 흔들기, 포퓰리즘, 외교 불안, 비판 봉쇄라는 증상이 한꺼번에 나타날 때 붙는 병명이다. 이를 선동이라 외치며 금지어로 만든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병을 부정하는 환자가 가장 위험하다.
베네수엘라는 배워야 할 나라가 아니다. 망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바라봐야 할 거울이다. 그리고 지금 이재명 정권은, 그 거울 앞에서 너무 오래 머뭇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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