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송년의 밤에 “희망은 늘 빛이 떠오르는 곳에 있다”고 강변하는 필자
크리스마스 휴일, 유난히 공기가 맑다. 신선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종종 새로운 역사를 맞이한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좋다. 마음속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간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승리와 패배를 경험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승리는 우리에게 조금을 가르쳐주지만, 패배는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는 사실을. 승리 속에서는 자신을 확인하고 안주하기 쉽지만, 패배 앞에서는 스스로를 해부하듯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패배는 아프지만, 그만큼 깊은 지혜를 남긴다.
산을 내려온 뒤, 중식당에서 마시는 공부가주 한 잔. 땀과 호흡이 가라앉은 그 순간, 삶도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술잔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지나온 길을 정리하는 작은 의식이 된다.
우리나라 사찰의 구조를 떠올려본다. 대한민국의 절은 대부분 입구부터 남향이다. 따뜻함을 향해 열려 있다. 이는 속세의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자비의 방향이다. 부처의 입상은 동쪽을 향해 서 있다. 어둠을 밀어내는 빛이 언제나 동쪽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절의 배치는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철학이자 메시지다. “희망은 늘 빛이 떠오르는 곳에 있다”고 말해준다.
국내 유일의 목조탑인 팔상전 내부에 있는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눈 팔상도"
법주사에는 세 개의 국보가 있다.
쌍사자석등, 석련지, 그리고 국내 유일의 목조탑인 팔상전. 팔상전 내부에는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눈 팔상도가 그려져 있다. 태어남에서 깨달음, 그리고 열반에 이르기까지. 이는 곧 인간의 삶이 겪는 고통과 성찰, 완성을 상징한다. 부처의 일생이 곧 우리의 인생과 다르지 않음을 조용히 일깨운다.
인생은 배와 같다. 배를 움직이려면 바람이 불어야 한다. 그것도 세차게 불어야 멀리 간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럴 때는 노라도 저어야 한다. 힘이 들고 속도가 느릴지라도, 멈춰 있는 것보다는 낫다. 결국 가는 사람만이 도착한다.
시련도 마찬가지다. 시련과 역경 없이 얻은 성공은 마치 공짜로 술을 얻어 마시는 것과 같다. 취할 수는 있어도, 오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반면 술값을 치르고 마신 술은 다르다. 그 맛과 무게를 안다. 인생도 그렇다. 고통을 통과한 성공만이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러시아 대문호 도스트예프스키는 "사람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크리스마스 휴일, 잠시 멈춰 서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바람이 불든, 불지 않든 오늘도 나는 내 노를 저으며 가고 있는가를.
적어도 우리는, 공짜 인생이 아니라 술값은 치르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박상희 한국농어촌희망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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