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처럼 오래 흐르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강변하는 필자
어제는 포근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잠시 허락된 듯한 온기가 마음까지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오늘은 다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자연은 늘 이렇게 우리에게 말한다. 겉으로 느껴지는 온기와 아름다움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고.
시간 앞에서 꽃은 결국 시들고, 향기는 바람에 흩어진다. 그 누구도 그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인생에서의 행복과 성공은 결코 혼자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가치관을 공유하며 살아왔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사악하거나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는 결국 삶을 소모시키고 황폐하게 만든다.
역사가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는 인류의 미래를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가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그처럼 성공을 거두었지만, 도덕상의 실패는 실로 비극이다. 도덕성의 격차가 계속 벌어진다면, 각자의 주머니 속에 원자 폭탄을 넣고 다녀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도덕성이 따라가지 못할 때 사회는 언제든 파괴의 방향으로 기울 수 있음을 일깨운다.
실제로 인생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도 불행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부와 명예, 성취가 있어도 도덕성이 결여된 삶은 결국 공허하다. 행복은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성이 빠진 행복은 허공을 치는 것과 같아, 손에 잡히는 듯하다가도 끝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과 성공은 도덕적 이념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만들어갈 때 배가 된다. 서로를 존중하고, 옳고 그름의 기준이 분명하며, 이익보다 양심을 우선하는 사람들과의 동행은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런 관계 속에서 성공은 의미를 얻고, 행복은 깊이를 갖는다.
결국 삶의 결론은 단순하다.
꽃처럼 잠시 반짝이는 삶이 아니라, 샘물처럼 오래 흐르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니던가. 즉, 외모보다 중심을 보고, 성취보다 도덕을 지키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
착하게 산다는 말은 결코 약한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장 오래 가는 힘이며, 가장 깊은 성공의 토대다. 인생은 결국 어떤 사람이었는가로 기억된다. 그러니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착하게 살았다.”
필자 송해룡 광성산업개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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