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뢰를 잃은 성공은 소음처럼 사라지고, 기록되지 않는다

약속과 신뢰를 배신하는 자들은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명제는 도덕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삶의 바닥을 통과한 이들이 끝내 도달하는 결론이다.

세상은 냉정하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주변이 북적이지만, 곤란한 순간이 닥치면 사람들은 놀랍도록 빠르게 사라진다.

남의 고통은 언제나 ‘남의 일’이 되고, 내 고통은 온전한 나의 것이다.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이는 거의 없다. 결국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삶의 냉혹한 진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정직이 보상받는 장면보다, 거짓과 기만이 성공으로 포장되는 장면을 더 자주 목격한다.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요령과 술수로 앞서 나가고, 원칙을 지키는 이들은 그들의 속임수에 상처 입어 속병을 앓는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이 현실에서는 거짓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 역시 그 현실을 뼈아프게 경험했다. 지난 1998년,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굳은 약조를 나눴다. 한 사람의 제의로, 나는 또 다른 한 사람에게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양보했다. 대신 미래에 대한 확고한 보장을 받았다. 그 약속을 나는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배신으로 돌아왔다. 약조를 깨뜨린 그 두 사람은 이후 모든 영예를 차지했고, 오히려 ‘깨끗하고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칭송까지 받았다. 배신에 치를 떨던 나는, 세상의 시선 속에서 사심 많고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낙오자로 전락했다.

삶은 잔인했지만, 거기서 멈추지는 않았다. 나는 시련과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섰고, 마침내 성공했다. 그리고 과거의 원한을 넘어 그 둘을 용서했다. 화해의 뜻으로 더 좋은 요직에까지 보냈다. 그 순간, 나는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지켰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내게 판단 착오로 사람을 잘못 믿고 정치적·현실적으로 가장 힘든 순간에 놓였을 때, 상황이 반전되어 그들은 또다시 같은 선택을 했다. 철저한 외면이었다. 과거에도 나를 발판 삼아 승승장구했으면서,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다. 그때 나는 다시 한 번 진리를 확인했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상황만 허락되면 또다시 배신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모든 일은 결국 나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자책과 후회가 오래 남았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잘나가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들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답일지도 모른다. 배신은 단기간의 이익을 안겨줄 수는 있어도, 사람의 이름과 자리를 오래 지켜주지는 못한다. 신뢰를 잃은 성공은 소음처럼 사라지고, 기록되지 않는다. 반면 고통 속에서도 원칙을 지킨 사람의 삶은 비록 느릴지언정, 끝내 자기 증명이 된다.

이 글은 복수를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자들이 잠시 앞서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남는 것은 신뢰의 총량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타인이 아닌, 스스로의 삶에 가장 엄정한 평가로 돌아온다.

배신은 언젠가 잊혀지지만, 신뢰를 저버린 인생은 끝내 스스로를 숨길 수 없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어쩌면 그들이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만들어가는 자의 몫이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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