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


기획예산처 장관은 나라 살림의 집사이기 전에 공정의 회계사다. 숫자를 맞추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누구의 몫을 줄이고 누구의 몫을 늘리는지에 대한 윤리적 감각이다. 이혜훈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을 하나씩 펼쳐 보면, 문제는 단발적 실수가 아니라 일관된 생활 방식에 가깝다. 공정을 설계할 사람이 공정을 우회할 때 이미 자격 미달이다.

Ⅰ. 입은 인격의 결산서다

인턴에게 “야! 야! 죽여버리고 싶다”, 보좌진에게 “똥오줌 못 가리냐?”라는 폭언은 감정의 미끄러짐이 아니라 권력의 습관이다. 사람은 윗사람에게 공손하고 아랫사람에게 거칠수록 스스로를 유능하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공직에서 언어는 인성의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 장비다. 재정을 다루는 손이 사람을 다루는 법부터 무너졌다면, 숫자는 언제든 무기가 된다.

Ⅱ. 제도는 접어서 가져갈 수 있는 종이가 아니다

강남 ‘로또 아파트’ 당첨을 위해 아들을 위장 이혼시키고 청약 점수를 부풀렸다는 의혹은, 사실이라면 제도 남용의 교본이다. 주택법과 청약 제도는 편법을 막기 위해 촘촘히 설계됐지만, 후보자는 그 그물을 ‘가족 이벤트’로 넘어갔다. 누군가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자신의 자산 목록으로 옮겨 적는 행위에 해학은 없다.

Ⅲ. 숫자는 거짓말을 오래 기억한다.

반포 아파트 재산 축소 신고 의혹, 배우자로부터 증여받은 분양권 지분의 증여세 납부 내역 누락. 여기에 “낼 세금은 모두 냈다”라는 해명이 이틀 만에 드러났다. 공직자윤리법의 핵심은 정확성이고, 재정 책임자의 생명은 신뢰다. 숫자 앞에서 말이 바뀌는 순간, 신뢰는 이자처럼 마이너스로 불어난다.

Ⅳ. 잔돈에도 원칙은 붙는다.

후보자와 가족·친인척이 대주주인 비상장회사 임원들로부터 장기간 고액 정치후원금을 받고, 그 대가로 회사 이해관계를 챙겨줬다는 의혹은 낯설지 않다. 정치자금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 교차를 막기 위해서다. 재산가라며 넉넉함을 말하면서도 정치자금이라는 통로로 잔돈푼까지 긁어모았다면, 그것은 절약이 아니라 경계 상실이다.

Ⅴ. 부모는 스펙이 아니다.

아들의 입시 과정에서 가족회사 공장 견학이 스펙으로 활용됐다는 정황은 조국 사태의 복사본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미 ‘부모 찬스’가 공정 신화를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경험했다. 같은 문제를 다른 얼굴로 반복하는 것은, 무감각이 아니라 오만이다.

Ⅵ. 차용증을 썼다고 증여가 대출로 되지 않는다.

시모로부터 받은 무이자·무담보 2억 원 차용은 형식만 대출이다. 상·증세법 제41조의4는 무이자 또는 저리 대출을 증여로 간주한다. 상환 시기와 방식은 차용인이 임의로 정하고, 실제 상환 내역도 없다.

청년은 대출 문턱에서 좌절하고 서민은 금리에 허덕이는데, 재산 175억 원의 국무위원 후보자는 ‘가족 금융’을 누렸다. 이것이 특혜가 아니면 무엇인가.

Ⅶ. 결론은 사퇴

기획예산처 장관은 세금을 걷고, 쓰고, 설명하는 자리다. 그러나 이혜훈 후보자의 기록에는 설명보다 해명이 많고, 설계보다 우회가 잦다. 공정은 구호로 말할수록 가벼워지고, 실천으로 증명할수록 무거워진다.

역사는 이렇게 적을 것이다. 공정을 설계해야 할 자리에, 공정을 피해 다니던 사람이 서려 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실패했다.

고무열 (안전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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