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뉴욕의 첫 CES 무대를 장식했던 주인공은 육중한 몸체에 흑백 화면을 담은 브라운관 TV였다. 그로부터 약 60년이 흐른 지금, 라스베이거스 CES 2026 현장에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더 이상 '바보상자'라 불리던 그 시절의 가전제품이 아니다. 이제 TV는 인간의 의도를 읽고 집안의 모든 기기를 진두지휘하는 '공감지능(Affectionate Intelligence)의 허브'로 완벽하게 변모했다.

지난 수십 년간 TV의 역사는 '더 크게, 더 선명하게'라는 단일 경로를 걸어왔다. 흑백에서 컬러로, HD에서 8K로, 그리고 LCD에서 OLED와 Micro LED로 이어지는 화질의 진화는 사실상 인간의 시각적 한계치에 도달했다. 하지만 CES 2026에서 목격된 변화는 사뭇 다르다.

이제 제조사들은 패널의 스펙 경쟁을 넘어 '스크린의 존재감 지우기'에 집중하고 있다. 투명 OLED 기술은 TV를 벽 뒤에 숨기거나 가구의 일부로 녹여내었고, 전원을 껐을 때 거대한 검은 유리판이 거실을 차지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오히려 기기는 배경으로 사라지고, 오직 '경험'만이 남는 역설적인 진화가 일어난 것이다.

- '보는 기기'에서 '듣고 이해하는 기기'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전환은 AI 엔진의 내면화'다. 과거의 AI가 단순히 화질의 노이즈를 제거하는 수준이었다면, CES 2026의 TV들은 사용자의 목소리 톤에서 감정을 읽고, 거실에 모인 가족 구성원의 얼굴을 인식해 각자에게 최적화된 콘텐츠 대시보드(문자판)를 생성한다.

삼성전자가 선보인 AI 컴패니언은 사용자가 "오늘 저녁은 좀 우울하네"라고 말하면, 조명을 낮추고 취향에 맞는 음악과 영상을 큐레이션하며 로봇 청소기에게 조용한 모드를 명령한다.

LG전자의 AI TV는 집안 곳곳에 퍼져 있는 센서 데이터를 통합하여 가전제품의 이상 징후를 미리 알려주거나 에너지 사용을 극적으로 줄이는 '홈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한다.

- TV, 가전을 넘어 삶의 인터페이스

흑백 TV 시절,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앉았던 이유는 오직 하나, '정보의 수동적 수용'이었다. 그러나 2026년의 TV는 사용자를 능동적으로 돕는 페르소나(Persona)를 가진다.

운동할 때는 실시간으로 자세를 교정해주는 퍼스널 트레이너가 되고, 요리할 때는 냉장고 속 재료를 기반으로 레시피를 제안하는 셰프가 된다. 결국 CES 2026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제 TV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픽셀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인간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흑백 TV에서 시작된 60년의 여정은 결국 '기술의 인간화'라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TV를 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가장 잘 아는 지능형 친구를 깨우는 시대에 살고 있다.

김창권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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