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용병의 죽음은 숙명일까…관광지에서 찾은 용병의 흔적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최근 미군 정예부대인 델타포스가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생포하는 과정에서, 그를 경호하던 쿠바 출신 정예 인력 32명이 몰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들은 베네수엘라 군의 정규 병력이 아니라, 쿠바에서 파견된 보안·정보 인력으로 분류된다.

왕이나 지도자를 지키기 위해 외부에서 데려온 외국인 용병은 정권이 위기를 맞으면 가장 먼저 죽음을 맞는 존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가운데에는 용병의 비극과 관련된 곳도 많다.

◇ 권력자가 외국 용병을 곁에 둔 이유

역사 속 군주들이 외국인 병력을 선호한 이유는 분명하다.

가장 위험한 적은 국경 너머가 아니라 내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혈연과 지연으로 얽힌 권력 집단은 언제든 반란의 씨앗이 될 수 있었고, 결국 누구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뿌리가 없는 사람들을 선택했다.

지역 기반도, 가문도 없고 내부 정치와 거리가 먼 외국인 병사와 노예병은 그 조건에 정확히 부합했다.

이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정권이 흔들릴 때다.

권력이 위기를 맞는 순간, 용병은 방패가 되어 스스로를 불태운다.

그들이 먼저 칼을 맞는 동안, 정권은 단 한 순간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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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의 빈사의 사자상 [사진/이진욱 기자]

◇ 스위스 용병의 비극…루체른 '빈사의 사자상'

스위스 루체른에는 창에 찔려 쓰러진 사자의 모습을 새긴 '빈사의 사자상'이 있다.

이 조각상은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 틸르리 궁을 지키다 전사한 스위스 근위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사자는 심장에 창이 꽂힌 채 마지막 힘으로 방패를 끌어안고 있는데, 그 방패에는 부르봉 왕조를 상징하는 백합 문양이 새겨져 있다.

프랑스 혁명의 격랑 속에서 루이 16세가 궁을 떠나고, 다른 경비 병력마저 와해한 상황에서도 스위스 근위병들은 자리를 지켰다.

그 결과 다수는 탈출하지 못한 채 현장에서 집단으로 희생됐다.

알프스 산악 지대에서 살아온 스위스인들에게 외국 군주를 섬기는 용병과 근위병의 길은 오랫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이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이유를 두고는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계약과 명예를 중시하는 전통, 근위병으로서의 의무감, 그리고 '달아난 용병을 어떤 왕조도 쓰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후세들은 말한다.

어떤 선택이었든, 그들의 죽음은 오늘날 루체른의 암벽에 새겨진 사자상으로 남아 있다.

스위스 근위병의 충성과 비극은 그렇게 돌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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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랑기아 용병의 비문이 남아 있는 아야 소피아 [사진/성연재 기자]

◇ '도끼병' 황제 친위대 바랑기아 용병

이스탄불에서는 동로마 제국 황제를 보위했던 바랑기아 친위대의 흔적을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아야 소피아에는 이들이 남긴 룬 문자 비문이 남아 있어, 북유럽 전사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 한복판에서 활동했음을 보여준다.

바랑기아 친위대는 10∼14세기 동로마 제국 황제의 개인 경호를 맡았던 정예 부대로, 북유럽 출신 전사들을 주축으로 구성됐다.

초기 구성원은 루스인이었으며, 9세기 후반부터 동로마 제국에서 복무하기 시작했다.

988년 바실리우스 2세 치하에서 공식 조직으로 편제됐는데, 키예프 대공 블라디미르 1세가 반란 진압을 위해 6천 명의 병력을 파견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황제는 이들의 검증된 충성심을 높이 평가해 개인 친위대로 삼았고, 이후 바랑기아 친위대는 10∼11세기 크레타와 시칠리아 원정 등 주요 군사 작전에 투입됐다.

이들은 상륙전과 성채 돌파의 선봉에 서며 맹활약했고, 북유럽 전사 특유의 양손 도끼 전투에 능했던 부대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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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루크왕조가 세운 이집트 카이로의 칼힐리 시장 [신화=연합뉴스]

◇ 아랍을 벌벌 떨게 한 맘루크 용병, 왕조를 세우다

모든 용병이 전멸하며 비극적 끝을 맺은 것은 아니다.

9세기부터 이집트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맘루크 용병의 끝은 전혀 다른 결말이 됐다.

이들은 술탄의 친위병으로, 외국에서 끌려온 소년 노예들이 군사 교육을 거쳐 정예 기병이 됐던 존재다.

그러나 맘루크는 역사의 희생물이 되는 대신 아이유브 왕조를 밀어내고 권력을 차지했다.

1250년 쿠데타를 통해 실권을 잡은 맘루크들은 아이유브 왕족을 허수아비로 삼아 권력을 휘둘렀다.

13∼16세기 이집트를 통치한 맘루크 술탄국의 흔적은 오늘날 카이로 시타델, 술탄 하산 모스크, 칼라운 복합체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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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외인부대가 도끼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 용병으로 부르기 애매한 프랑스 외인부대

프랑스 육군에는 흔히 용병으로 오해받는 외인부대가 있다. 그러나 외인부대는 일반적인 용병과 달리 프랑스 정부가 직접 채용·관리하는 군인으로 구성된 정규군 조직이다.

특정 군주나 권력자를 개인적으로 보위하는 사병 성격의 용병과는 제도적·법적 성격이 분명히 다르다.

외인부대의 기원은 18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는 식민지 알제리 통치와 전쟁 과정에서 유럽 각국에서 유입된 외국인 부랑자와 망명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왕 루이 필리프 1세는 외국인들을 모집해 군 조직에 편입하고, 해외 전장에 투입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이렇게 외국인으로 구성된 별도의 부대가 외인부대의 출발점이 됐다.

창설 이후 외인부대는 19세기 식민지 전쟁부터 현대의 분쟁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전장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쌓았다.

수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 프랑스군 내에서도 가장 혹독한 훈련과 강한 전투력을 갖춘 엘리트 부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현재도 프랑스 정부의 명령에 따라 북아프리카, 중동, 아프가니스탄 등 다양한 분쟁 지역에 파병되고 있다.

한편 외인부대 저격수로 복무한 경력이 있는 송안식 씨가 2021년 프랑스 한인회장에 당선되며, 외인부대 출신 인물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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