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 조용히 줄어드는 것은 인구만이 아니라 희망이다

출산율 0.75. 이 숫자는 통계가 아니라 경고다. 한 사회가 스스로를 재생산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역사적 경보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TV 앞에서 웃고, 내일의 불안을 오락으로 덮는다. ‘나 혼자 산다’는 프로그램이 장수하는 풍경은 개인의 선택을 비난하기보다, 이 사회가 공동의 미래를 사유하는 능력을 얼마나 잃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다. 구조다.
정치판은 다음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선거를 바라본다. 인구절벽은 10년, 20년 후의 문제이기에 정책 우선순위에서 늘 밀려난다. 저출산은 모든 정책의 상위 개념이어야 함에도, 언제나 “논의 중”이라는 말 뒤에 숨는다. 정권은 연장되면 다행이고, 미래는 연기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반복된다.

문화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노동’으로 환원하는 사고는 인간을 관계가 아닌 계산의 단위로 만든다. 가사도 노동, 육아도 노동, 돌봄도 노동이라는 말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언어가 사랑과 헌신, 연대와 책임이라는 비가시적 가치를 밀어내고, 모든 관계를 손익 계산으로 재단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결혼은 계약이 되고, 가족은 프로젝트가 되며, 아이는 ‘비용 대비 효용’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유물론적 사고는 세대를 가로질러 축적되었다. 성장기에는 경쟁을, 성인기에는 성취를, 중년에는 불안을 학습했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를 동반자가 아니라 조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상대의 인간적 가능성보다 현재의 스펙과 자산을 먼저 묻는 풍토 속에서, 결혼이 줄어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과도한 기대와 불안정한 현실이 맞물리면, 선택은 언제나 ‘미루기’가 된다.

한국은 지금 ‘후진국’이 아니라 ‘후퇴국’의 길목에 서 있다. 후진은 따라잡을 수 있지만, 후퇴는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인구감소는 국력의 후퇴를 의미한다. 인간은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수행하는 유일한 존재다. 사람이 줄면 시장이 줄고, 시장이 줄면 산업이 무너진다. 맛집과 편의점에서 시작된 쇠퇴는 옷·신발, 전자제품, 자동차 산업으로 번진다. 이는 가정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전 세계에서 '인구 절벽' 문제가 가장 심각한 사례로 한국을 재차 거론했다. 이러한 해외 전문가들의 직설적인 경고가 아픈 이유는,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살률 세계 최고 수준, 출산율 최저 수준. 이 두 지표는 한 사회의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왜 여기까지 왔는가. 왜 알고도 방치했는가. 왜 미래를 말하는 정치인은 드물고, 당장의 분노를 자극하는 언어만 넘쳐나는가.

해답은 단순하지 않다. 주거비·교육비 등 양육 비용 부담, 경력 단절 우려와 직장 문화의 경직성, 결혼·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장시간 노동과 낮은 삶의 만족도 등으로 인해 결혼이나 출산 자체가 고통을 수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방향은 분명하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있는데 그저 출산 장려금 몇 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안정된 일자리, 예측 가능한 주거, 신뢰 가능한 돌봄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사회적 메시지가 필요하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되,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회피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우리가 오늘 무엇을 외면했는지의 총합으로 도착한다. 지금 웃고 있는 오락의 화면 뒤에서, 조용히 줄어드는 것은 인구만이 아니라 희망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이 사회는 다음 세대를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면, 침묵 자체가 선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미래는 준비된 자의 영광이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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