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을 위하여 건배하는 필자



- 돈이 기준이 되고, 성공의 잣대가 되고, 인간의 가치를 서열화한다

세상이 점점 상업주의에 병들어 가고 있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신뢰보다 돈이 먼저이고,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 역시 ‘얼마를 벌 수 있는가’가 가치의 기준이 된다. 국가 간 관계조차 돈 앞에서는 우방도 동맹도 의미를 잃는다. 냉정하게 말해, 오늘의 세계에서 돈이 최고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칭다오 맥주공장에서 함께하는 필자(가운데 중앙)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옛 성현들과 사회의 지도층은 왜 한결같이 돈을 경계하고,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강조했을까. 그들 역시 돈의 힘과 효용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멀리하라’고 말한 데에는 분명 시대를 초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안빈낙도는 가난을 미화하자는 말이 아니다. 돈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두라는 경고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돈이 수단의 자리를 떠나 목표가 되는 순간이다. 그때부터 인간의 판단은 흐려지고, 관계는 계산으로 변하며, 사회는 경쟁이 아닌 투쟁의 장으로 전락한다.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이 남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는 부를 거부하라는 뜻이 아니라, 부에 지배당하지 말라는 선언이었다. 지도자와 엘리트에게 돈은 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욱 그것을 ‘돌처럼’ 다루지 않으면, 결국 사람을 잃고 시대를 잃게 된다는 통찰이 담겨 있다.

오늘 우리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에 가까운 시대를 살고 있다.
돈이 기준이 되고, 성공의 잣대가 되고, 인간의 가치를 서열화한다. 그 결과 사회는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따뜻하지는 않다. 성장했을지는 몰라도 행복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엘리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역사는 언제나 상층의 가치관이 사회 전체의 방향을 결정해 왔다. 엘리트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삼으면 사회는 탐욕을 닮고, 엘리트가 절제와 책임을 선택하면 사회는 균형을 회복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反)자본주의가 아니다. 돈을 부정하는 것도, 시장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돈보다 먼저 와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인간의 존엄, 공동체의 신뢰, 함께 살아가는 질서 말이다.

"돈이 강해질수록, 가치는 더 강해야 한다."고 보는 필자(가운데 중앙)


돈이 강해질수록, 가치는 더 강해야 한다. 물질이 풍요로울수록, 정신은 더욱 단단해야 한다. 이것이 성현들이 안빈낙도를 말했던 이유이며, 오늘 우리가 다시 그 말을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이 불행한 물질만능의 시대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방향으로 돌려놓는 일이 절실하다. 그 출발점은 다시 한 번, 엘리트들이 멋지게 앞장서는 데서 시작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필자 송해룡 광성산업개발 회장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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