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빈민의 항쟁과 인간성 회복에 대한 염원
문순태의 『그들의 새벽』(한길사, 2000년)은 「무등굿」(『문예중앙』, 1987년)과 「5월의 그대」(『전남일보』, 1996~1997년)를 보완하여 발간한 소설집이다. 1980년 5월 27일 최후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한 300명의 무장시민군의 일원인 구두닦이, 철가방, 술집 여급, 양아치, 가정부, 공장 직공 등 도시 빈민들의 시각으로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시골 출신 기동은 신문기자가 되려고 야학에 다니는 구두닦이다. 그는 사람의 대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그가 짝사랑하는 호스티스 미스 진, 야학 친구들인 철가방, 구두찍새, 미용사 등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도시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여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5.18민주화운동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기동은 진의 죽음에 분노하여, 친구들은 주변 사람들의 죽음에 분개하여 항쟁하며, 5월 27일 새벽 대학생들이 떠나버린 도청을 끝까지 지키다가 최후를 맞는다.
작가는 1970년대 수몰지 사람들의 도시 이주와 그들의 빈곤을 다룬 소설들을 발표했다. 「징소리」(『창작과 비평』50호, 1978.12), 「말하는 징소리」(『신동아』 181호, 1979.9), 「마지막 징소리」(『문학과 사상』, 1979.12) 등은 장성댐 건설로 고향을 잃어버린 수몰지 사람들의 고향 상실과 도시 빈민의 삶을 질박한 어투의 문장, 토속적인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칠복은 고향에서 문서 없는 자갈논을 장만하고 아내와 무탈하게 살아가던 인물이다. 황소 같은 힘은 고향에서 큰 자산이었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무기였다. 그러나 장성댐 공사로 고향이 수몰되면서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황소같이 힘이 셀지라도 도시에서 품을 팔아주는 사람도 사주는 사람도 없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그는 행복한 날들을 그리워하며 고향을 떠올린다.
필자는 1973년 휴교령이 내려진 초겨울 3수를 하는 친구를 응원하기 위해 예비고사 고사장에 들렀다가 담양군 용면 산동네에 간 적이 있다. 장성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지로 지정된 곳이어서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나이가 몇 살 많은 김정수는 우리를 위해 마을 청년들을 동원하여 염소 서리를 했다. 마을 청년들이 서리하러 간다고 해서 어린 시절 고향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닭을 가져올 줄 알았는데 흑염소를 몰고 왔다. 시골 청년들이 통이 크고 겁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경운기를 타고 추월산 입구까지 가서 산에 올랐다. 눈발이 날리고 있는 산길을 구두를 신고 걷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만 젊은 혈기에 정상까지 올라갔다. 염소 임자가 알면 얼마나 속이 상할 것인가 걱정이 되어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괜찮다고 하였다. 순박하기 그지없던 그들은 고향이 수몰되면서 도시로 이주하여 빈궁하게 살았다. 그때의 일로 대학에서 「징소리」 연작을 강의할 때마다 수몰지의 도시 빈민들을 떠올리곤 했다.
작가는 80년 5월 27일 새벽, 도시 빈민들이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서 왜 죽음을 선택했는가 하는 의문을 밝혀내기 위해 고해성사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들은 왜 삶의 길을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작가는 그들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마지막 희망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죽어도 후회는 하지 맙시다. 요 며칠 동안은 태어나서 첨으로 사람대접 한번 잘 받어 봤지 않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옳다면 우리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겁니다.’
기동과 그 친구들은 도시에서 쓸만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구두닦이, 호스티스, 철가방, 구두찍새, 미용사 등을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천대받고 비루한 존재로 살았다. 억압받고 불평등하고 미움을 받는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야학에 다녔지만, 종일 뼈가 빠지게 일하고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은 항쟁에 참여하여 열성적으로 도청에서 밥을 짓거나 시민군으로 활동했다. 5.18민주화운동이 그들에게는 억압과 차별이 없고 사랑이 있는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평화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작가에게 평화는 고향과 유사한 개념이다. 고향은 사랑과 믿음이 충만한 곳이고, 끈끈하게 정이 흘러넘치고, 자유와 정의가 바로 서 있고, 거짓이 없고, 부와 권력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일이 없는 사람다운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의 울타리 속, 바로 그런 곳이다. 우리가 이런 고향을 잃어버렸다면 반드시 찾아야 하고 그러기에 고향을 찾자는 이야기는 사람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며 인간성 회복의 외침이다. 고향이야말로 작가의 문학적 원천이다. 이 샘이 마르면 그의 영혼도 흩어져 날아갈 것이다.
송현호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아주대 인문대학장, 절강대 교환교수, 서울대 객원연구원, 연변대 교환교수, 중앙민족대 석학교수, 길림대(주해) 체류교수, 남부대 석좌교수, 문학평론가협회 국제이사, 학술단체총연합회 이사, 한국현대문학회 부회장, 한중인문학회 회장, 한국현대소설학회 회장, 한국학진흥사업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9년 세계인명사전 Marquis Who’s Who에 등재되었다. 현재 아주대 명예교수, 한국현대소설학회 명예회장, 한중인문학회 명예회장, 안휘재경대 석좌교수, 절강월수외대 석좌교수, 무한대 한국학진흥사업단 수석연구원, 포토맥포럼 한국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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