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부터 대련시장 그리고 필자 임학래(당시 중국상하이 교민신문 및 잡지발행인) 워렌버핏과 맨 오른쪽 문희연 중국 총괄법인장(대구텍)


'투자의 달인' 버핏 투자사, 현금 보유 546조원…사상 최고치

2008년 가을, 중국 랴오닝성 대련(大連). 세계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짙게 깔리던 그 시절,
나는 당시 상하이 교민신문 및 잡지사 발행인으로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을 직접 취재할 기회를 얻었다. 그 이름은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었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짧지 않았다. 2박 3일 동안, 나는 그가 머물던 호텔과 공장 현장을 오가며 식사를 함께 하는 동안 그의 말과 표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의 언어는 숫자가 아닌, 철학의 영역에 가까웠다.

죄측으로 부터 대련시장 필자( 임학래 ) 그리고 워런 버핏과의 대화중 캡펴

■ “Cash is not a sword. It’s a seed.”

버핏 회장은 첫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현금은 위기 속의 칼이 아니라 씨앗입니다.
어디에 뿌릴지 아는 자만이 진짜 투자자예요.”

그때 영어에 서툴렀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2025년 11월, 버크셔 해서웨이의 현금 보유액은 3,817억 달러(약 546조 원)에 달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의 ‘기다림의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필자 임학래 와 워런 버핏

■ “Korea builds things that last.”

당시 나를 대련으로 초대한 **문희연 법인장(대구텍 중국총괄 대표)**에 따르면,
워런 버핏은 2006년 이스라엘 절삭공구 대기업 **IMC 그룹(International Metalworking Companies)**의 지분 80%를 인수했다.
IMC 산하에는 한국의 **대구텍(TaeguTec)**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인수를 통해 대구텍은 자연스럽게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회사가 되었다.

그날 대련 산업단지에서는 대구텍의 중국 신공장 건설 현장이 공개됐다.
버핏은 천천히 생산 라인을 돌며 이렇게 말했다.

“Korea builds things that last.”
“한국은 오래가는 것을 만든다.”

그는 한국 기술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Craftsmanship(장인정신)”이라는 단어를 수차례 되뇌었다.

그의 눈은 재무제표가 아니라, 사람의 손끝을 보고 있었다.

■ ‘대구텍 모델’, 그리고 세계 속의 위상

대구텍은 원래 한국 국영기업 대한중석에서 출발했다. 이후 절삭공구 분야로 발전하며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IMC 그룹 산하에서 성장한 대구텍은 세계적 금속가공 그룹 중 하나로 꼽히며, 언론에서는 종종 “세계 3대 절삭공구 회사” 라는 표현이 쓰인다.

다만, 이 표현은 공식 기관의 순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언론·기업 홍보 용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만큼 대구텍이 한국 기술력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온 셈이다.

■ “I don’t buy stocks. I buy stories.”

버핏은 인터뷰 중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주식을 사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삽니다.”

그의 투자는 단기 수익이 아니라 기업의 내재가치와 사람의 신뢰를 중심에 둔 가치투자(Value Investing) 였다. 이 철학이 바로 ‘대구텍 인수’의 진짜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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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전시된 워런 버핏 회장의 캐릭터 상품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 17년 후, 그 말의 의미가 드러나다

시간이 흘러 2025년, 그는 546조 원의 현금을 쌓아둔 채 새로운 투자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묻는다. “왜 투자하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이미 그 답을 들었다.

“돈은 기다릴 때 가치가 커집니다.”

2008년 대련에서 그의 입으로 직접 들은 그 한마디는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많은 투자자들은 워런 버핏을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철학과는 정반대로 행동한다. 주가가 조금만 올라가도 팔고, 조금만 내려가도 겁내며 손을 뗀다.
‘돈은 기다릴 때 가치가 커진다’는 버핏의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시장을 이기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인내임을, 우리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 기술, 철학, 그리고 기다림

그날 대련의 공장은 단순한 산업시설이 아니었다. ‘자본이 기술을 존중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버핏은 투자자가 아니라 철학자였고, 그의 선택은 자본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신념으로 이어졌다.

조중동e뉴스 편집국장 임학래

팩트로 세상을 읽고, 제도로 사회를 바꾼다. — 조중동e뉴스 임학래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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