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조중동 e뉴스 김명수 발행인과 함께하는 필자(좌측)
세월은 머무르지 않고, 시간은 물 흐르듯 스쳐 간다. 어느덧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 가을은 그렇게 우리 곁에서 조용히 깊어가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이지만, 유독 올해의 바람은 더 차고,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지나온 나날들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 버렸는지를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속 구절은 이러한 마음을 더욱 또렷하게 일깨운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 그의 시는 우리 삶이 때로는 특별한 의미를 찾아 헤맬 만큼 복잡하지도, 그렇다고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해야 할 만큼 거창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전한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비극처럼, 또는 영웅담처럼 여기지만, 정작 현실 속 삶은 그저 하루의 반복 속에서 소소하게 이어지는 잡지 표지 같은 평범함에 가깝다. 하지만 바로 그 평범함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때로 큰 기대를 품고, 때로는 마음이 앞서 경솔해지기도 한다.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릴 때는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두어 실패를 부르고, 몇 번의 시행착오와 상처를 겪은 뒤에야 비로소 성취의 문턱을 밟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생의 깊이는 곡절의 수만큼 자란다. 시인 박인환이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린다”고 읊조렸듯, 우리가 갈망하는 이상은 늘 머리 위에 걸려 있고, 현실은 귓가에서 소리만 낼 뿐 잡힐 듯 잡히지 않기에 더욱 애틋한 것이다.
후배들과 맥주한잔 나누는 필자(맨 좌측)
결국 인간의 삶은 자연의 섭리와 다르지 않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진다. 생명은 싹트고 자라지만, 결국엔 시들고 사라진다. 우리는 언젠가 마를 풀이고, 지는 꽃이다. 그렇기에 삶은 영원함을 향한 집착이 아니라, 주어진 순간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인생의 본질은 덧없음에 있다. 그러나 그 덧없음이야말로 우리를 겸허하게 만들고, 오늘의 한 걸음과 한 마음을 소중하게 만든다. 세월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그 흐름 속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는 것이 인간의 지혜다.
젊은 날에 축구명감독인 거스히딩크를 격려하는 필자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바람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분명히 무언가 남는다. 회한일 수도, 성장일 수도, 혹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사일 수도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 시절, 우리는 다시 한 번 삶의 본질 앞에 서게 된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고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쌓일 때 비로소, 풀은 마르지만 그 향기는 오래 남는 법이다.
<박상희 한국농어촌희망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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