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의 항소 포기, 정의를 묻어버린 자들

Ⅰ. 정의를 버린 검찰의 침묵

나라가 참으로 희한한 나라가 됐다. 도둑이 정의를 외치고, 판관이 눈을 가리고, 검찰이 스스로 혀를 묶는다. 대장동 비리의 진실이 권력의 심장부로 향하려던 찰나, 검찰은 슬그머니 항소를 포기했다. 국민이 분노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의를 표했다. 한때 법의 상징이던 저울은 이제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었고, 법의 눈가리개는 정의가 아니라 권력을 위해 쓰인다.

Ⅱ. 항소 포기, 진실의 매장식

항소 포기라니, 이게 나라냐!! 검찰이 권력의 하명에 무릎을 꿇고, 수사팀의 손을 묶은 채 그냥 잊자고 한다. 국민은 안다. 누가 그만두라 했는지, 왜 그랬는지, 그 윗선이 어디까지인지. 입을 다문 자는 방관자가 아니라 공범이다. 법이 정의를 지켜야 하는데, 이제 법이 권력을 지킨다. 항소 포기란 이름의 결정은 결국 ‘진실의 사형선고’다. 그날의 서류에는 잉크 대신 침묵이 찍혀 있었다.

Ⅲ. 민주주의의 탈을 쓴 권력보존 주식회사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라는 간판만 걸린 권력보존주식회사다. 입법은 여당이 독점하고, 행정은 코드 인사로 점령됐다. 사법은 권력의 의전에 줄을 섰다. 내 편이면 무죄, 네 편이면 유죄라는 이 기괴한 법칙이 오늘의 법치다. 이쯤 되면 내란 청산이 아니라 ‘국가 청산 프로젝트’라 불러야 한다. 해체, 숙청, 색출 이 세 단어가 오늘의 행정 언어로 통용된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자 하나를 위한 ‘친위정치’의 복원이다.

Ⅳ. 충성의 점수와 언론의 재갈

군 장성 서른 명이 하루아침에 쫓겨나고, 공직사회엔 충성 점수가 매겨진다. 충성 없는 자는 배제되고, 비판하는 자는 숙청된다. 공무원은 보고서 대신 충성 맹세를 쓰고, 검사는 수사 대신 눈치를 본다. 언론 역시 펜 대신 침묵을 택한다. 기자는 취재 대신 지침을 따르고, 논설위원은 진실 대신 안전한 문장을 쓴다.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의 군무(群舞)를 춘다. 그 춤의 지휘자는 권력이고, 그 음악은 공포다.

Ⅴ. 진실을 삼켜버린 권력의 식탁

한때 이 나라는 정의를 노래했다. 지금은 정의란 단어조차 검열 대상이다. 검찰의 항소 포기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의 매장식(埋葬式)이다. 권력의 식탁 위에서 진실은 썰리고, 법은 곁들임으로 놓인다. 진실을 삼킨 권력은 결국 자신을 소화하지 못하고 체한다. 그때 국민의 분노가 해독제처럼 터져 나온다.

Ⅵ. 법치를 죽인 자, 그 이름은 권력

입법 내란으로 사법을 마비시키고, 검찰을 굴복시킨 정권은 스스로 법치의 대통령이라 부른다. 그러나 법치를 죽인 이는 바로 그 자신이다. 법의 이름으로 정의를 묻고, 정의의 이름으로 권력을 보호한다. 이건 단순한 직무 유기가 아니다. 이건 정의 살해죄다. 법의 심장은 멈췄고, 헌법은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 앞에서 권력은 여유롭게 담배를 피운다.

Ⅶ. 국민의 이름으로 진상규명을 요구한다.

국회는 지금이라도 긴급히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 법사위·운영위가 아니라, ‘국가정신수사본부’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누가 지시했는지, 왜 항소를 막았는지, 대통령실은 관여했는지 그걸 밝히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법은 이제 권력의 부속품이 된다. 검찰이 국민 대신 권력의 변호사가 된다면, 그날부터 나라는 법치가 아니라 ‘명치’로 다스려진다.

Ⅷ. 침묵의 거리, 분노의 국민

국민은 묻고 있다. ‘이게 나라냐?’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거리엔 침묵과 체념이 흩날리고, 언론은 모른 척한다. 정의는 구석에서 흐느끼고, 국민은 그 눈물을 대신 닦는다. 그러나 이 침묵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분노는 고요 속에서 발효된다.

Ⅸ. 아직 미치지 않은 국민이 희망이다.

권력은 국민의 분노 앞에 영원하지 않다. 거짓은 잠시 진실을 덮을 수 있어도, 썩은 냄새는 언젠가 새어 나온다. 지금 그 냄새가 진동한다. ‘대장동, 항소 포기, 정의 사망’ 나라가 미쳐 돌아간다. 그러나 아직 국민은 미쳐 있지 않다. 그게 이 나라의 마지막 희망이다.

진실은 때로 늦게 오지만,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권력은 반드시 심판받는다. 정의는 죽지 않았다. 지금은 다만, 깊이 잠들어 있을 뿐이다. 간절히 깨어나길 바란다.

고무열 교수(안전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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