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리' 작가 권기수, 캐릭터 벗어나 오방색 대나무로 새 실험
오방색 대나무 구현한 '색죽'…전통의 색감을 디지털로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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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수 개인전 '색죽, 비선' 전시 전경 [사비나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머리털 열 가닥이 돋은 하얗고 동그란 얼굴의 '동구리' 캐릭터로 잘 알려진 작가 권기수(52)가 이번에는 '동구리'에서 벗어나 오방색 대나무를 주제로 한 새로운 실험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8일 시작한 권기수 개인전 '색죽, 비선'(色竹, 飛線)은 전통 동양화에 등장하는 대나무와 오방색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회화, 입체, 설치 작품들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색죽은 오방색 대나무를, 비선은 비상하는 듯한 곡선을 의미한다.

개막에 앞서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동구리가 참 소중한 존재지만 내 작품에서 어떤 형상만 나오면 관람객들이 '이건 동구리구나' 하고 생각하더라"며 "이번에는 동구리에서 벗어나 구조와 색감에 집중해 추상으로 나아가려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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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수 개인전 '색죽, 비선' 전시 전경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권기수 개인전 '색죽, 비선' 전시 전경. 2025.11.9. laecorp@yna.co.kr

이번에 내놓은 신작들은 작가가 수작업으로 조합한 500여 가지 오방색에서 출발한다. 그는 전통 동양화에서 일필휘지로 그려지던 대나무 대신, 디지털의 모듈성과 정확성을 살린 색면 디자인으로 오방색 대나무를 구현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철학을 온돌과 보일러에 빗대 설명했다. 보일러는 온돌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지만, 구현 방법은 온돌과 전혀 다르듯이 자신도 현대의 방법으로 전통을 계승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는 "김칫독과 김치냉장고, 무쇠솥과 압력밥솥 같은 맥락"이라며 "이번에는 전통의 색감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전통을 계승해보려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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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수 작 '죽림-오감도' [사비나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설치 작품 '죽림-오감도'는 전시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대형 설치물이다. 버티컬 블라인드에 작가가 배색한 오방색을 프린트했다.

블라인드가 접혀 있을 때는 전시장 중앙이 텅 비어 있다가, 일정 시간마다 8개의 모터가 작동하면서 블라인드가 전시장을 가로질러 펼쳐진다. 그 안으로 들어가 블라인드를 따라 걸으면 오방색 대나무 길을 걷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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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수 작 '비선 엉킴' [사비나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나무라 하면 수직으로 곧게 솟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대나무는 탄성이 뛰어나고 유연하다. 작가는 이런 탄성을 비상하는 선으로 표현했다.

'지붕, 치마, 그리고 날개-담장'은 2점의 캔버스 작품이다. 오방색 대나무를 세로가 아닌 가로로 배치했다. 그랬더니 보는 각도에 따라 지붕의 처마, 천사의 날개, 대나무 담장, 옆으로 퍼지는 치마로 변주된다.

설치 작품 '비선-엉킴' 역시 오방색 블라인드를 이용해 대나무의 탄성을 시각화했다.

작가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이 보이도록 했다"며 "하나의 작품에 다양한 한국적 요소들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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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수 작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권기수 개인전 '색죽, 비선' 전시장에서 권기수 작가가 7일 '지붕, 치마, 그리고 날개-담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11.9. laecorp@yna.co.kr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신작들은 '동구리'를 벗어났지만, 동구리를 그리워하는 관람객을 위한 별도의 전시도 마련됐다.

미술관 4층에서 열리는 '근원수필 2008-2024'에는 작가가 지난 20여년간 한국 전통 회화를 재해석한 작품들이 걸렸다.

아름다운 산수를 거닐고, 뱃놀이하고, 때로는 하늘을 나는 동구리를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2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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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수 작 '타임' [사비나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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