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경제 현실은 냉혹하다. 고환율·고물가·고이율이라는 이른바 ‘3중고’ 속에서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다. 생존을 위한 노동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이들이 있는 반면, 유동성 확대의 파고를 타고 부동산과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로 자산을 불린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같은 시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더 가난해지고, 누군가는 더 부유해지는 현실. 빈익빈 부익부는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일상의 체감이다.
그러나 이 불균형의 시대에도 분명한 진실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 돈을 요행이나 도박이 아닌 신성한 노동의 대가로 벌 때, 그 돈은 삶을 잠시 소비하는 수단이 아니라 행복을 지속시키는 토대가 된다는 사실이다. 부동산과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로 손쉽게 얻은 돈은 손쉽게 사라지지만, 땀과 시간, 책임이 스며든 노동의 결과는 인간의 존엄을 지켜준다.
‘신성한 노동’은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좀먹는 세 가지 큰 악(惡), 곧 지루함·부도덕·가난을 동시에 제거하는 힘을 가진다. 노동은 인간에게 목적을 부여하고, 도덕적 긴장을 유지하게 하며, 최소한의 자립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노동이 가진 윤리적 가치이며, 우리가 어떤 시대에도 노동을 경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지금은 롯데월드타워보다 낮지만, 과거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올려다보며 인간의 욕망과 야망은 끝이 없다고 느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중년기에 접어든 지금, 인생 역시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편하게 살든, 힘들게 살든 이 또한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이 단순한 진실을 끝내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데 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모두 ‘그때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것에 집착하며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어리석음은 무지에서 오고, 무지는 스스로를 끝없는 결핍 속에 가두어 둔다.
"땀과 시간, 책임이 스며든 노동의 결과는 인간의 존엄을 지켜준다."고 강변하는 필자(가운데 중앙)
불교 철학자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자신만의 해탈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모든 생명과 우주가 지속되는 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이며, 인간다운 존재 방식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나는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모든 생명체와 이 우주가 존속하는 동안, 나 또한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지키며,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서겠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삶의 태도이며, 이 불확실한 시대를 건너는 최소한의 양심이다.
결국 인생에서 남는 것은 얼마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살았느냐다. 그리고 그 태도의 중심에는 언제나 노동과 연대, 그리고 깨어 있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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