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襟度’라는 말은 무겁게 쓰인다. 본래 남을 포용할 만한 도량을 뜻하지만, 한국 정치 맥락에서는 정치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나 선, 즉 ‘정치적 도의’를 의미하곤 한다.

최근 이혜훈 전 의원의 행보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도 결국 이것이다. 과연 그의 선택은 정당한 정치적 결단이었나, 아니면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선 실리 추구였나.

- 정치적 자산의 훼손

이 전 의원을 비판하는 쪽의 논리는 명확하다. 정치는 결국 ‘말’과 ‘명분’으로 먹고사는 업이다. 특히 이 전 의원은 소신파 경제 전문가로서 보수 진영 내에서도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공천 과정에서의 반발이나 당적 변경, 혹은 연고가 옅은 지역구로의 이동을 선택할 때, 대중은 그가 가졌던 ‘합리성’이라는 브랜드가 ‘권력욕’으로 바뀌게되는 현상을 목격한다.

정치인이 자신의 기반을 쉽게 옮기거나 과거의 가치와 충돌하는 선택을 할 때, 유권자는 배신감을 넘어 정치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이것이 바로 그가 ‘금도를 넘었다’고 지적받는 지점이다.

- 정치적 생존의 절박함

하지만 반대편의 시각은 좀 더 냉혹하고 현실적이다. 한국의 정당 정치는 과연 정치인에게 ‘소신’을 지킬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계파 갈등과 불투명한 공천 시스템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중진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생장을 이어가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그리 많지 않다. 그의 선택을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는 이들은, 정치인이 무대에서 사라지는 순간 그가 가진 정책적 역량도 사장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더 큰 정치를 하기 위한 전략적 후퇴나 우회로일 뿐, 이를 도덕적 잣대로만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게 결벽증적인 시각이라는 주장이다.

- 판단은 ‘시간’과 ‘유권자’의 몫

정치의 금도는 고정된 선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과 유권자의 눈높이에 따라 그 유연함의 폭이 달라진다. 과거에는 ‘배신’이라 낙인찍혔던 행보가 훗날 ‘시대적 결단’으로 재평가받기도 하고, 반대로 ‘신의’를 지켰던 선택이 ‘무능한 고집’으로 남기도 한다.

이혜훈 전 의원의 선택이 금도를 넘었는지에 대한 최종 판결문은 아직 작성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새로운 위치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해 유의미한 정치적 성과를 낸다면, 오늘의 논란은 ‘개척자의 진통’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당선만을 위한 행보에 그친다면, 그는 ‘금도를 허문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인의 행보는 기록으로 남고, 평가는 투표함에서 완성된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한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던진 위험한 승부수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당연히 그의 몫이다.

김창권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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