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금융기관의 신뢰는 바로 올바른 인사에서부터 시작된다
KDB산업은행 임원 인사를 둘러싼 갈등과, 김현준 위원장의 단식투쟁 소식을 접하며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노사 갈등이나 인사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금융공기업의 정체성과 국가 미래 전략을 가늠하는 중대한 시험이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숨은 엔진이었다. 한강의 기적 이면에는 언제나 산업은행이 있었다. 중화학공업의 태동부터 수출산업 육성,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 이르기까지 산업은행은 언제나 국가 경제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책임을 감당해왔다. 오늘날에도 AI, 우주, 국방, 해양, 바이오 등 첨단 전략산업을 뒷받침하는 핵심 금융기관으로서, 150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 펀드 운용 주체 중 하나라는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강행된 부산 이전 정책은 산업은행 조직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구성원들의 자괴감, 인력 이탈, 조직 운영의 혼선은 단순한 내부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손실로 직결되었다. 무엇보다 금융 전문성과 연속성이 생명인 정책금융기관이 정치적 계산과 지역 표심 논리에 휘둘렸다는 점에서, 그 피해는 조직을 넘어 국가적 차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행되는 이번 임원 인사는 단순한 자리 채우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부산 이전을 무비판적으로 동조하거나, 조직의 전문성과 자율성보다 정치적 판단에 편승했던 인사가 다시 핵심 보직을 맡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보복이나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책임과 원칙의 문제다. 국가 금융기관의 신뢰는 바로 이런 인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산업은행의 임원은 정부나 회장의 뜻을 무조건 따르는 ‘순응형 관리자’가 아니라, 국가 미래를 위해 소신 있게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AI와 첨단 전략산업, 그리고 150조 펀드의 성패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유능함과 덕망, 그리고 조직 구성원들의 신뢰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인사가 아니라면, 어떤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국정 전반에 혼신을 다하고 계신 이대통령과 금융당국 역시 매우 바쁘시겠지만, 산업은행 임원 인사만큼은 각별히 냉정한 평가와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를 바란다. 특히 디테일 행정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이대통령의 세심한 관심은, 지금 깊은 상처와 피로감 속에 있는 산업은행 직원들에게 다시 한 번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산업은행은 특정 지역이나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다. 산업은행은 대한민국의 것이며, 미래 세대의 것이다. 이번 인사가 그 사실을 분명히 증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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