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을사년, 송년모임을 함께하는 필자(우측 네번째)


- 한 여가수가 남긴 침묵의 유산

한 해를 맺어가는 이 시기, 우리는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으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건강을 먼저 살피고, 함께 걷는 이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이 때에, 한 여가수의 삶을 통해 ‘약속’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그 여가수는 1928년 단성사에서 "황성 옛터"를 처음 불렀던 ‘이 애리수’다.아름다운 미모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세상을 매료시키며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존재였다. 그러나 인기의 절정에서 그녀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사망설까지 돌 정도로 기억에서 잊힌 이유는 그녀의 삶을 지탱한 단 하나의 신념, 바로 ‘약속’ 때문이었다.

청년 연세대생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시부모 앞에서 결혼을 약속했다. 하지만 “가수는 며느리로 맞을 수 없다”는 이유로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자살 소동까지 벌었으나 뜻을 꺾지 못한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그것은 가수라는 사실을 숨기고, 앞으로는 절대 노래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그 약속을 지켜낸 끝에 결혼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 2년 후,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는 다시 무대에 서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였으나 그녀의 대답은 단호했다.

“돌아가셨지만, 약속은 약속입니다.”

그녀는 그 말 그대로 평생을 조용한 주부로 살았다. 98세가 되어서야 세상은 그녀의 존재를 다시 발견했고, 이듬해 99세로 타계했다. 자녀들조차 어머니가 가수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정신으로 살았는가’가 아닐까?

약속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다

수많은 생명 중 오직 인간만이 약속을 한다. 개나 원숭이처럼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도 “미리 약속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은 없다. 약속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고,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다.

우리는 흔히 ‘먹는 것(食)’을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信(신)이 무너지면 社會(사회)의 根幹(근간)이 흔들린다.” 사실 식욕은 생명을 유지시키지만, 믿음은 사회를 유지시키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믿음이 무너지면 약속이 사라지고, 약속이 사라지면 공동체는 혼란에 빠진다.

오늘 한국 사회의 불신과 그 책임은 그 누구에게 있는가

OECD 국가 중 한국인의 상대 불신률은 상위권이다. “어려울 때 의지할 곳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지도자층의 식언(食言)에서 비롯된다. 위에 있는 사람이 약속을 가볍게 여기면, 아래 사람들도 따라한다. 모방심리가 작동하고, 거짓말이 죄책감 없이 확산된다. 결국 사회 전체의 규범이 흔들리고, 불신이 일상화된다.

약속이 무너진 사회는 부패하고, 공동체는 병든다. 반면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는 자연스레 신뢰가 쌓이고, 신뢰는 곧 삶의 안전망이 된다.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약속이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었는가, 어떤 감투를 썼는가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러나 약속을 지킨 정신, 믿음을 지킨 태도는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하나의 삶의 품격이 된다. 우리 모두가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고, 한 번 주고받은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선택한다면, 우리가 향하는 그 ‘약속의 땅’에서 웃으며 만나 막걸리 한 잔 기울이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신뢰는 거창한 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고 사소한 약속 하나를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약속은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능력이며, 믿음은 공동체가 서 있는 유일한 토대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약속 하나가 내일의 신뢰와 내일의 사회를 만든다.


조영노 동일전력/JY전력 회장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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