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돋보기] "다룰 사람이 없다"…텅 빈 한국 AI 두뇌
GPU·데이터센터 늘었지만 시니어 인재는 고갈
인재 순유출국 한국, 'AI 3강' 목표의 최대 약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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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자리는 어디에'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5 청년취업사관학교 AI 인재페스티벌에서 참석자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피고 있다. 2025.12.2 saba@yna.co.kr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웃돈을 주고라도 모셔 오고 싶죠. 그런데 돈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아예 씨가 말랐어요."
국내 유망 AI 스타트업 A사 임원은 최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엔비디아 최신 GPU(그래픽처리장치) 물량을 어렵게 확보했다.
수백억 원을 쏟아부어 인프라를 깔아놨지만, 정작 이 장비로 거대언어모델(LLM)을 고도화할 '수석 엔지니어급' 인력을 수개월째 구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A사 임원은 "미국 빅테크 연봉의 70% 수준까지 맞춰주겠다고 제안해도 실력 있는 개발자들은 이미 실리콘밸리로 떠났거나 국내 대기업이 '싹쓸이'해 간 뒤였다"며 "무기는 비싸게 주고 샀는데, 정작 총을 쏠 병사가 없는 형국"이라고 토로했다.
우리나라가 'AI 3강' 도약을 목표로 데이터센터 건립과 GPU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이를 구동할 핵심 인재가 고갈되는 '풍요 속의 빈곤'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드웨어라는 '그릇'은 커졌는데, 그 안을 채울 '두뇌'는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절대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역설적인 상황인 셈이다.
◇ "세계적 수준 AI 인재, 한국엔 없다"
학계와 업계의 진단은 냉정하다.
한국의 AI 하드웨어 경쟁력은 메모리 반도체를 필두로 세계적 수준에 근접했지만, 소프트웨어 및 모델링 인력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민관 협력으로 엔비디아 GPU 26만 장 도입을 확정 짓고 이 중 3만7천 장을 우선 확보해 연구·교육·데이터센터에 푸는 등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문제다.
글로벌 AI 인재 추적 데이터와 각종 해외 연구를 종합해보면 한국에서 키워낸 고급 AI 인재의 약 40%가 해외 기업이나 연구소에 둥지를 튼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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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개발부터 재무·마케팅까지…KT 에이블스쿨 잡페어 (서울=연합뉴스) KT가 지난 18일 청년 AI인재양성 프로그램 KT 에이블스쿨(KT AIVLE School) 4기 교육생의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잡페어(Job Fair)를 개최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KT 에이블스쿨 잡페어 현장에서 에이블스쿨 4기 교육생들이 채용 정보를 얻고 있는 모습. 2024.1.19 [KT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시카고대 폴슨연구소 산하 매크로폴로의 조사 결과도 충격적이다.
한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AI 인재의 40%가량이 해외에 체류 중인 것으로 나타나 한국은 대표적인 'AI 인재 순유출국'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대한상공회의소 SGI 분석에서도 한국의 인구 1만 명당 AI 인재 순유출입 지표는 -0.36명으로, OECD 38개국 중 하위권인 35위에 머물렀다.
스탠퍼드대의 'AI 인덱스' 등 민간 분석에서도 "한국은 인재를 배출하지만, 그들이 국내 산업 현장에 남지 않는 구조"라는 지적이 뼈아프게 반복된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AI 관련학과 교수는 "박사 과정 제자 중 소위 'S급'으로 불리는 학생들은 졸업 전부터 미국 빅테크의 러브콜을 받는다"면서 "국내 기업이 제시하는 처우나 연구 자율성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못 미친다는 방증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결국 GPU와 데이터센터는 늘어나는데, 이를 활용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모델을 만들 '시니어급 아키텍트'는 씨가 마르고 있다는 얘기다.
◇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몸값 거품만 키웠다
해외 유출을 피하고 국내에 남은 한 줌의 인재 풀(pool)을 놓고는 기업 간 '출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삼성전자[005930], SK텔레콤 등 주요 기업들은 한정된 파이 안에서 서로의 인재를 빼가는 '회전문 채용'을 반복 중이다.
이 과정에서 개발자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이것이 기술의 총량적 발전보다는 비용 상승만 부추긴다는 비판이 거세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의 수급 전망은 암울하다. 인공지능·클라우드 등 신기술 분야 인력 부족은 향후 수년간 누적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AI 분야에서만 1만2천800명, 클라우드 분야에서 1만8천800명의 신규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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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채용 설명회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5 청년취업사관학교 AI 인재페스티벌에서 참석자들이 각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2025.12.2 saba@yna.co.kr
대한상공회의소는 2029년까지 신기술 분야 중·고급 인재가 약 58만 명이나 부족할 수 있다는 경고등을 켰다.
실제 현장의 체감도는 더 심각하다.
SPRi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AI 기업의 인력 부족률은 7%를 상회하며, 당장 필요한 인력 대비 수천 명에서 1만 명 안팎의 자리가 비어 있다.
한국은행 역시 "국내 AI 인력이 5만 명대 중반까지 늘긴 했지만 낮은 임금 경쟁력 등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은 여전하다"고 분석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은 웃돈을 주고 옆 동네 사람을 데려오는 '폭탄 돌리기'식 제로섬 싸움"이라며 "주니어급은 AI 대학원이나 부트캠프를 통해 배출되고 있지만 5년 이상 실무 경험을 갖춘 고급 인력은 공급이 수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 인재 쇄국주의 깨야…"해외 두뇌 유치전, 선택 아닌 필수"
전문가들은 '자체 육성'만 고집해서는 가속화되는 AI 발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 AI 선도국들처럼 빗장을 풀고 해외 우수 인재를 적극 받아들이는 개방형 정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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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글로벌 최대 AI 학회서 인재 확보 박차 (서울=연합뉴스) LG전자가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세계 최대 AI 학회 CVPR 2025에서 AI 인재 확보를 위한 'LGE AI Night' 행사를 진행했다고 16일 밝혔다. LGE AI Night에 참가한 학생이 본인의 연구 논문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2025.6.16 [LG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주요국은 이미 '인재 블랙홀' 전략을 펴고 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은 AI·STEM 전공자에게 취업·영주권 패스트트랙, 파격적인 세제 혜택, 연구비 지원 등을 제시하며 전 세계 두뇌를 빨아들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복잡한 비자 절차, 높은 언어 장벽, 열악한 정주 여건 탓에 AI 인재 유치 경쟁에서 사실상 '꼴찌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비자 문턱을 낮추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인재들이 한국을 'AI 연구의 허브'로 선택할 만한 확실한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득세 감면이나 주거 지원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GPU와 데이터센터 투자가 해외 인재 유입 전략과 결합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외치는 'AI 3대 강국'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AI 패권 경쟁에서 1차 대전이 'GPU 확보'였다면, 2차 대전은 '인재 쟁탈전'이다.
국내 인재를 어떻게 지키고, 해외 인재를 얼마나 과감하게 끌어들일 수 있느냐가 향후 10년 한국 AI의 생존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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