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거 사다리의 상징이었던 ‘전세’가 유례없는 존립 위기에 처해 있다. 누군가는 이를 '자연스러운 시장의 흐름'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서민 주거 복지의 붕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무이자로 남의 돈을 빌려 집을 사고, 목돈을 맡겨 공짜로 남의 집에 사는’ 독특한 공생 관계가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 전세, 시대의 소명을 다하다

전세 제도는 과거 고성장·고금리 시대의 산물이다. 집주인은 집값 상승을 확신하며 무이자 대출(전세금)을 받아 집을 샀고, 세입자는 낮은 은행 이자보다 저렴한 ‘기회비용’으로 내 집 마련을 위한 종잣돈을 모았다. 하지만 저성장 기조와 인구 구조의 변화는 이 완벽한 균형을 깨뜨렸다. 집값이 우상향할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리자 전세금은 '안전한 예치금'이 아닌 '언제든 떼일 수 있는 부채'가 되었다. 여기에 전세 사기라는 사회적 비극은 전세 제도의 근간인 '신뢰'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 '월세화'라는 피할 수 없는 파도

이제 시장은 빠르게 '월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선호도의 문제가 아니다.

공급자(임대인) 입장에서는 강화된 보유세와 종부세를 감당하기 위해 현금이 필요해졌다. 수요자(임차인) 입장에서는 고금리 상황에서 전세대출 이자를 내는 것보다 차라리 월세를 내는 것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유리해졌다. 결국 전세의 종말은 주거의 '자산 가치'보다 '사용 가치'가 중요해지는 시대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소유하지 않고 이용하는 '구독 경제'의 논리가 주거 시장에도 상륙한 셈이다.

문제는 전세라는 사다리가 사라진 뒤의 대안이다

전세는 한국인들에게 사실상 강제 저축의 수단이자, 자산 형성의 핵심 동력이었다. 월세 시대의 본격화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청년 세대의 자산 축적 속도를 더욱 늦출 위험이 크다. 이제 국가와 사회는 '전세 유지'에 목맬 것이 아니라, 전세 없이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질 높은 임대주택 공급과 임대 시장의 투명성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

또한, 개인들은 '전세금=내 자산'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월세 지출을 상쇄할 수 있는 새로운 자산 관리 전략을 고민해야만 한다.

전세 종말의 시대는 두렵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는 단순히 거주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경제적 문법이 바뀌는 거대한 전환점이다. 우리는 이제 '전세금'이라는 안온한 울타리를 넘어, 더 냉혹하지만 투명한 월세 시장에서의 생존법을 익혀야 할 때다.

김창권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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