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AI 시대, 저급한 정치와 기묘한 동거

한국은 반도체와 AI에서 세계 정상급 국가다. 서버는 초당 수십억 개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알고리즘은 인간의 판단을 앞질러 학습한다. 그런데 정치는 여전히 확성기와 손팻말의 속도로 움직인다.

기술은 미래로 질주하는데, 정치는 과거의 슬로건에 매달려 질질 끌려간다. 이 기묘한 동거는 단순한 엇박자가 아니라, 국가 운영 철학의 낙후를 드러내는 풍경이다. 문제는 기술이 늦어서가 아니라 정치가 타락하고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Ⅱ. 데이터는 침묵하고, 구호만 떠드는 권력

한국 정치에서 정책은 분석이 아니라 주문처럼 외워진다. 정의, 개혁, 내란, 탄핵, 적폐라는 단어들은 숫자와 통계를 몰아낸 만능 부적이다. 예산이 어디에 쓰였는지, 법안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 질문은 불편한 물음이 된다. AI 시대의 정치는 무엇이 작동하는가를 물어야 하지만, 한국 정치는 ‘누가 우리 편인가’를 먼저 따진다. 말은 화려하고 책임은 늘 실종된다.

Ⅲ. 싸움에 중독된 정치, 관리 능력은 실종

정치는 원래 관리의 기술이다. 인구 절벽, 연금 고갈, 의료 재정, 노동 구조 전환 같은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계산의 영역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계산서를 들여다보기보다 상대 진영의 멱살을 잡는 데 더 익숙하다. 국회는 정책 공장이 아니라 갈등 중계소가 되고, 국정은 운영이 아니라 전쟁이 된다. 이쯤 되면 정치는 국가를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분노를 유통하는 산업처럼 보인다.

Ⅳ. 쉬운 분노, 어려운 책임을 피해 가는 습관

싸우는 정치는 쉽다. 목소리를 높이면 지지율이 오르고, 실패의 책임은 늘 ‘저쪽’ 탓으로 돌리면 된다. 반면 관리하는 정치는 괴롭다. 숫자로 성과를 증명해야 하고, 실패하면 변명할 구호도 없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늘 쉬운 싸움을 택하고, 어려운 관리는 회피한다. 이 반복된 선택의 결과는 단순하다. 사회는 점점 험해지고, 정치는 요란하기만 하다.

Ⅴ. AI 시대, 아날로그 정당

정당은 여전히 계파와 공천권, 충성 경쟁에 갇혀 있다. 데이터 분석 조직은 장식품이고, 정책 평가는 구호 뒤에 숨는다. 말 잘하는 사람이 전략가가 되고, 줄 잘 서는 사람이 전문가가 된다. 실패에서 학습하는 시스템은 없고, 같은 실수는 늘 새 구호로 포장된다. 정당이 늙으면 정치도 함께 노쇠한다.

Ⅵ. 분노를 소비하는 관객 민주주의

이 퇴행의 책임을 정치인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시민 역시 분노를 소비하며 진영극을 관람한다. 공약 이행률보다 말실수에 열광하고, 정책 성과보다 상대 진영의 몰락에 박수를 친다. 정치를 드라마처럼 소비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쉽게 피로해진다. AI 시대의 시민은 팬이 아니라 평가자여야 한다.

Ⅶ. 필요한 것은 AI 정치가 아니라 철학의 교체

한국 정치에 필요한 것은 ‘AI를 쓰는 정치’가 아니다. 감정에서 데이터로, 구호에서 성과로, 대결에서 관리로 이동하는 정치 철학의 전환이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정치를 진화시키는 것은 책임과 결과를 중시하는 권력 운용이다. 이 전환에 실패한다면 한국은 세계 최고 기술국가로는 남을 수 있어도, 성숙한 정치 국가로 도약하는 데는 끝내 실패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대표 고위직 정치인 중 애국자는 없고 모두 정치 협잡꾼만 있을 뿐이다.

고무열 교수(안전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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