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의장이 마이크를 끄는 순간, 국회는 침묵을 강요당했다.

국회의장이 저지른 ‘마이크 차단’은 단순한 진행상의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국회의 토론권을 물리적으로 제거한 폭거이며, 헌정 질서를 지탱하는 마지막 안전핀을 칼로 끊어낸 행위다. 국회의장은 발언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발언이 끝까지 이뤄지도록 보호해야 할 관리자다. 그가 먼저 입을 막았다면, 이미 의장의 직무는 끝난 것이다.

II. 필리버스터를 오독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파괴했다.

필리버스터는 의제에 딱 맞는 말만 허용하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의제 바깥까지 확장될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다. 그것이 다수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소수를 보호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국회의장이 의제 외 발언이라는 이유로 마이크를 껐다는 것은 무지가 아니라 고의적 왜곡이다. 규칙을 모른 것이 아니라, 규칙이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III. 김대중의 이름을 들먹일 자격을 스스로 말살했다.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필리버스터는 오늘날 민주주의 교과서에 남아 있다. 그는 외환을 말했고, 역사를 말했고, 권력을 말했고, 결국 말하는 행위 자체로 폭주를 멈춰 세웠다.

그 정신을 계승한다던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이 오늘날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김대중의 필리버스터를 ‘의제 외’라며 끊어버릴 사람, 바로 지금의 민주당이다. 이것은 노선 변경이 아니라 정신의 배반이다.

IV. 정회라는 탈을 쓴 토론 살해

더 추악한 장면은 그 다음이다. 마이크를 끄고, 다수당이 고성을 지르자 그 소란을 이유로 정회했다. 이것은 중립적 판단이 아니라, 조용히 하라고 소수파를 짓밟은 연출된 장면이다.

필리버스터는 종결 동의와 표결로만 끝낼 수 있다는 국회법의 대원칙을, 국회의장은 정회라는 편법으로 짓밟았다. 이쯤 되면 진행자가 아니라 집행자다.

V. 민주당식 ‘입틀막 매뉴얼’의 완성

이제 수법은 공식이 되었다.

① 의제 해석을 독점해 마이크를 끄고

② 항의하면 다수의 소란으로 덮고

③ 그 소란을 빌미로 정회해 시간을 잘라내고

④ 숫자 게임 법안으로 제도를 말려 죽인다.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것은 의회 독재의 정교한 진화다. 과거 군홧발 대신 의사봉을 들었을 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

VI. 다수당의 충복이 된 의장은 더 이상 의장이 아니다.

국회의장은 다수당을 편하게 해주는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다수당이 가장 불편해해야 할 위치다. 그런데 국회의장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불편한 야당의 입을 막고, 다수당의 고성을 방패로 삼았다. 이 순간 그는 중립자가 아니라 권력의 하수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VII. 사과 없는 침묵은 유죄 선언이다.

이 사안은 해명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사과, 명확한 재발 방지 약속, 그리고 국회의장으로서의 인식 전환이 없다면, 국회의장은 김대중을 언급할 자격도, 필리버스터를 입에 올릴 자격도 없다.

민주주의는 깃발이 아니라 절차로 증명된다. 그 절차를 파괴한 자가 의장 자리에 앉아 있는 한, 국회는 더 이상 국민의 의회가 아니다. 마이크를 끈 것은 한 의원의 발언이 아니라, 국회의 숨통이었다. 그 책임은 오롯이 국회의장에게 있다.

고무열 박사(안전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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