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찾기위해 힐링하는 필자
조용히 나 자신을 뒤돌아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본다. 내 나잇값은 과연 충분했는가, 내 곁을 지켜준 벗들은 어떠한가, 그리고 내 삶과 얽힌 수많은 인연들은 또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
독일 민요에는 이런 한 구절이 있다. “나는 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목숨의 길이는 모른다.”
삶의 길이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몇 살을 살았느냐보다, 그 나이에 걸맞게 얼마나 올바르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느냐가 우리의 품격을 결정한다. 결국 문제는 나이 값이다.
고희를 지나며 마주하는 현실
많은 이들이 일흔을 넘기며 말한다. “추하게 늙고 싶진 않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현실은 쉽지 않다. 쉰을 지나고 예순을 넘기며, 우리는 종종 외로워지고 자신에 대한 만족도는 줄어든다.
건강, 일, 친구, 꿈 등 잃어가는 것이 많아질수록 삶은 점점 가벼워지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우아하게 살 수 있다. 나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길이 없다. 노년에는 무엇보다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에게 대답하며 작지만 단단한 꿈을 다시 세우는 것, 그것이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삶이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
차가운 겨울, 새벽기도를 마치고 난 후 교회 앞에선 필자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미처 돌아보지 못했을 뿐 늘 곁에 머물러 있었다. 내일이 오면 행복해질 거라 믿는 사람은 정작 오늘의 행복을 놓치고 만다. ‘지금’이라는 순간에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일’의 행복도 손에 넣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을 다시 한 번 깊이 바라보자. 내가 가진 것,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오늘의 건강, 오늘의 웃음, 이 모든 것이 바로 내가 찾던 행복의 형태들이다.
나이를 먹는 것은 자연의 섭리지만 나이 값을 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건강을 지키고, 의미 있는 일을 지속하며, 따뜻한 우정을 가꾸고, 작은 꿈이라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아름답게, 기품 있게, 그리고 만족스럽게 우리만의 황혼을 살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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