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다시 태어나 펠리컨이 되다…줄리 커티스 첫 한국 개인전
서울 화이트큐브서 신작 20여 점 공개…모성과 돌봄 주제의 회화·조각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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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커티스 작 '두 요람'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5일 서울 청담동 화이트큐브 서울에 전시된 줄리 커티스의 2025년작 '두 요람'. 2025.11.5. laecorp@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두 개의 캔버스가 나란히 붙어 있다. 왼쪽 캔버스에는 흰 드레스를 입은 두 여성이 검은 유모차 안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오른쪽 캔버스에는 두 여성 대신 검은 부리의 두 마리 펠리컨(사다새)이 자리한다. 검은 부리는 검은 유모차와 닮았다. 유모차 안에서는 아이의 손이, 부리 안에서는 새끼를 위한 물고기가 삐져나와 있다.
프랑스 출신 작가 줄리 커티스(43)의 한국 첫 개인전 '깃털로 만든 여인'(Maid in Feathers)이 서울 청담동 화이트큐브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탄생과 돌봄, 여성의 가사노동을 초현실적 이미지로 풀어낸 유화, 종이에 그린 과슈 작업, 조각 등 신작 20여 점이 출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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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커티스 작 '대청소'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5일 서울 청담동 화이트큐브 서울에 전시된 줄리 커티스의 2025년작 '대청소'. 2025.11.5. laecorp@yna.co.kr
펠리컨은 서양에서 모성을 상징하는 새다. 자식에게 줄 먹이가 부족하면 자신의 몸을 쪼아 상처를 낸 뒤 새끼에게 피를 먹여 살렸다는 신화가 있다. 실제로는 부리 밑 주머니(부낭)에 물고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토해내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데, 이 모습이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는 것처럼 보여 생긴 신화다.
지난해 아들을 낳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을 비롯한 여성, 곧 '엄마'를 펠리컨으로 형상화했다. 작품 속 여성들은 모두 얼굴이 나오지 않지만 펠리컨은 온전히 얼굴을 드러내고 살짝 웃는 듯한 표정을 보여준다.
이번 개인전을 위해 한국을 찾은 작가는 "출산은 아이가 태어나는 일인 동시에 여자가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일이기도 하다"며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에는 탄생과 관련된 다양한 상징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펠리컨 외에도 자주 등장하는 사물은 달걀이다. 달걀은 여성의 난자처럼 생명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여성이 계란을 요리에 사용한다는 점에서 가사 노동, 돌봄을 의미하기도 한다.
회화 작품 '거품기를 든 여자'(Woman with a Whisk)와 '대청소'(Spring Cleaning)는 가사 노동에 내재한 성정치적 역학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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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커티스 개인전 '깃털로 만든 여인' 5일 서울 청담동 화이트큐브 서울에 전시된 줄리 커티스의 2025년작 '밤의 방문자'(왼쪽)와 '에코'. 2025.11.5. laecorp@yna.co.kr
2025년 작 '밤의 방문자'(Nocturnal Visitor)는 어둠 속에 있는 펠리컨이 나온다. 펠리컨의 눈과 보름달을 수평으로 배치해 두 눈이 관람객을 보는 것 같다.
2025년 작 '에코'(Echo)는 소리의 파장처럼 여성이 점점 커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화면 구석에는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가 앉아있다.
두 작품 모두 밤 또는 새벽이 배경이다. 어린 아기를 돌보는 엄마의 깊은 피로와 불안의 상태를 표현한 듯하다. 색채도 주로 검정과 흰색의 단조로운 대비로 구성됐다.
작가는 "엄마가 되고 나니 삶의 패턴이 단순해지면서 작품도 단순해진 것 같다"며 "엄마로서의 삶은 낮과 밤의 구분이 사라지고 경계가 매우 흐릿해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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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커티스 개인전 '깃털로 만든 여인' 전시 전경 [화이트큐브 서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프랑스와 베트남 혈통을 함께 지닌 작가는 파리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 뉴욕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2004년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 영 아티스트상을 받았고 여러 차례 펠로우십 프로그램의 참가 작가로 선정됐다.
화이트 큐브 홍콩(2023년)과 뉴욕 안톤 컨 갤러리(2022년), 런던 화이트 큐브 메이슨스 야드(2021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는 내년 1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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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커티스 [화이트큐브 서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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