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언어로 밥 먹는 사람들의 딜레마

작가와 기자는 언어로 세상을 해석한다. 그러나 요즘은 세상을 팔아 언어를 소비한다. 글은 사유(思惟)가 아니라 마케팅이 되었고, 작가는 사상가보다 콘텐츠 생산자로 불린다. SNS에선 감정이 사유를 이기고, 한 문장의 진실보다 한 줄의 조회수가 더 위대하다.

문학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언어는 휘발된다. 작가는 이제 현실을 증언하기보다 감성을 배달한다. 세상은 시를 원하지 않고 문장을 포장한 상품을 원할 뿐이다. 언어의 윤리는 그렇게 할인되어 버렸다.

Ⅱ. 문단의 침묵, 시대의 공범

권력이 거짓을 말할 때, 작가가 침묵하면 문학은 권력의 방패가 된다. 요즘 문단은 조용하다. 세상이 무너져도, 불의가 판을 쳐도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라는 중립의 미학을 고수한다. 그러나 그 중립이란 이름의 의자에 앉아 있는 순간, 작가는 이미 권력의 식탁에 초대받은 셈이다.

작가의 사명은 불의한 권력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는 것이다. 진실을 외면하는 예술은 화려하지만, 공허하다. 진실을 응시하는 예술은 거칠지만, 인간적이다.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Ⅲ. 언어의 타락, 감정의 폭주

언어가 가벼워지면 감정은 무거워진다. 오늘의 문학은 분노를 팔고, 슬픔을 포장하며, 감동을 거래한다. 작가는 고통을 관찰하면서도, 그 고통에 참여하지 않는다. “아름답다”라는 말로 모든 현실을 미화할 때, 언어는 인간의 감정을 도둑질한다.

문학의 윤리란 결국 감정의 상업화를 거부하는 용기다. 진짜 문장은 눈물보다 냉철해야 하고, 감동보다 정의로워야 한다. 지금 우리의 언어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너무나 비겁하다.

Ⅳ. 권력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

검열의 시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의 시대’다. 권력이 작가를 구속할 수는 있지만, 독자가 외면하면 작가는 사라진다. 그래서 요즘의 작가들은 권력보다 대중을 두려워한다. 불편한 문장은 판매를 떨어뜨리고, 현실 비판은 구독자를 줄인다. 그래서 모두가 조심스럽게, 예쁘게, 무난하게 쓴다.

그러나 예쁜 문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문학의 힘은 불편함에서 나온다. 독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세상을 일깨우는 문장, 그것이 진짜 언어다. 작가가 세상을 위로만 한다면, 그 위로는 현실을 마비시키는 마취제에 불과하다.

Ⅴ. 진실을 쓰는 일은 고통을 견디는 일

작가의 윤리란 결국 고통의 견딤이다. 시대의 상처를 마주할 때 눈을 돌리지 않고, 자신의 문장이 그 상처 위에 놓일 수 있음을 감당하는 일. 솔제니친이 수용소의 절규를 기록했고, 황석영이 전쟁의 참상을 썼듯, 작가란 세상의 상처를 언어로 남기는 증언자다.

그 글이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마지막 불씨가 된다. 글쓰기는 고통의 형식이고, 윤리는 그 고통을 끝까지 견디는 힘이다.

Ⅵ. 문학의 윤리, 인간의 양심

작가의 윤리는 도덕이 아니라 태도다. 언어를 속이지 않으려는 태도, 인간의 고통을 가볍게 다루지 않으려는 태도, 권력의 달콤한 언어를 거부하는 태도다. 작가가 언어의 윤리를 잃는 순간, 사회는 말의 진실을 잃는다. 그리고 언어가 부패하기 시작하면, 그 사회는 결국 진실을 잃는다.

언어는 인간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그 그릇이 깨지면 내용도 흐른다. 작가가 그 그릇을 지키지 못하면, 시대의 진실은 모두 쏟아진다.

Ⅶ. 언어 윤리, 세상의 마지막 방파제

진실은 언제나 느리고, 거짓은 빠르다. 그러나 끝내 이기는 것은 느린 쪽이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그 느림을 지키는 일이다. 언어는 시대의 기록이며, 문학은 인간의 기억이다. 선동의 문장은 폭죽처럼 터지고 사라지지만, 윤리의 문장은 불씨처럼 남아 세대를 비춘다.

작가의 윤리는 결국 인간의 윤리이며, 언어의 도덕이다. 세상이 거짓의 언어로 요란할수록, 작가는 더욱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진실을 써야 한다. 언어를 팔아 생을 이어가는 사람이라면, 그 언어의 무게로 세상을 견뎌야 한다. 진실을 외면한 글이 유행할 수 있지만, 진실을 견딘 글은 역사가 된다.

고무열 교수(안전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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