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A원우들과 송년모임을 함께하는 필자(중앙 좌측)


- 고독은 우리를 성찰하게 하고, 만남은 우리를 다시 살게 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함께’의 가치를 말해왔다. 친구가 많고 모임에 적극적인 사람은 건강한 사회인으로 평가받고, 혼자 있는 사람은 종종 고립되거나 외로운 존재로 오해받아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어느새 ‘함께 있음’만이 삶의 정답인 것처럼 살아왔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인생은 언제나 혼자 있음과 함께 있음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어진 삶은 결국 흔들릴 수밖에 없다.

고독에는 두 얼굴이 있다. 우울과 불안으로 우리를 잠식하는 ‘나쁜 고독’이 있는가 하면, 쉼과 자유, 성찰과 창조의 힘을 길러주는 ‘좋은 고독’도 있다. 좋은 고독은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과 마주하고 삶을 재정비하는 내면의 시간이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상처를 추스르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준비한다.

힘들 때일수록, 그래서 우리는 함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필자


미국의 소설가 펄 벅은 “내 안에는 나 혼자 살고 있는 고독의 장소가 있다. 그곳은 말라붙은 마음을 소생시키는 단 하나의 장소”라고 했다. 이처럼 고독은 회피해야 할 공백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필수적인 통로다. 혼자 있는 시간은 우리를 타인의 소음에서 잠시 떼어내어,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다시 찾게 한다.

그러나 2025년 송년의 시간,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고독이 아무리 좋은 힘을 지닌다 해도, 인간은 혼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삶이 버겁고 마음이 무너질 듯한 순간일수록, 우리는 다시 ‘함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고독이 내면을 단단하게 만든다면, 함께함은 그 단단함을 세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함께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무거움을 나누어 드는 일이고,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신뢰다. 힘들 때 “괜찮다”고 말해주는 한 사람, 조용히 손을 내밀어주는 한 공동체는 고독이 줄 수 없는 온기를 전해준다. 떠들썩한 웃음보다, 힘든 순간에 건네는 짧은 안부가 더 깊은 위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삶은 결국 혼자 있음과 함께 있음이 서로를 보완하는 리듬 속에서 완성된다. 고독은 우리를 성찰하게 하고, 만남은 우리를 다시 살게 한다. 고요 속에서 자신을 다듬은 사람만이 진정으로 타인과 깊이 만날 수 있고, 따뜻한 만남을 경험한 사람만이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끄러운 웃음 뒤에 찾아오는 고요, 그리고 그 고요를 지나 다시 만나는 사람들. 이 순환이 있을 때 삶은 비로소 균형을 갖는다.

“혼자라서 버텼고, 함께라서 살아남았다”고 강변하는 필자(맨 우측)


송년은 바로 그 균형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한 해 동안 우리는 각자의 고독 속에서 버텨왔고, 또 누군가의 손을 잡으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서로에게 말해야 한다. “혼자라서 버텼고, 함께라서 살아남았다”고.

혼자 있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러나 힘들 때일수록 함께 하기를 주저하지도 말자. 좋은 고독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고, 그 힘으로 다시 누군가의 곁으로 나아가자. 결국 인생은 ‘좋은 고독’과 ‘따뜻한 만남’이 함께 엮어가는 여정이다.

2025년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다시 사람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말 한마디, 안부 한 줄, 조용한 동행 하나가 누군가의 겨울을 건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 때일수록, 그래서 우리는 함께여야 한다.

조영노 동일전력/JY전력 회장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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