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클


지난 수년간 뉴욕증시를 지탱해온 거대한 기둥, ‘AI 무패 신화’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 진원지는 클라우드와 데이터베이스의 거인 오라클(Oracle)이다.

최근 오라클이 보여준 주가 폭락과 자금 조달의 난항은 단순한 실적 부진을 넘어, 실체가 보이지 않는 AI 장밋빛 전망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온 기술주 시장 전체에 엄중한 경고장을 던지고 있다.

“수익은 언제 나는가?”

오라클 충격의 표면적 이유는 매출 미달과 자본 지출(CAPEX)의 과도한 상향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투자자들의 깊은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오라클은 이번 분기 매출이 시장 기대에 못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투자 규모를 기존보다 수십조 원 상향 조정했다. 과거라면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로 칭송받았을 행보다. 하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바뀌었다. 이제 투자자들은 “얼마를 쓰는가”가 아니라 “언제 벌어오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빅테크들이 AI 인프라에 쏟아붓는 수백조 원의 자본이 실제 이익으로 치환되지 않는다면, 이는 혁신이 아니라 재앙에 가까운 ‘비용의 늪’이 될 수 있다는 의구심이 오라클을 통해 터져 나온 것이다.

- 빚으로 쌓은‘AI 바벨탑’의 위기

이번 사태에서 특히 뼈아픈 대목은 오라클의 재무 구조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알파벳처럼 현금이 넘쳐나는 빅테크와 달리, 오라클은 막대한 부채를 동원해 AI 전쟁에 참전해 왔다.

100억 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폭등한 것은 시장이 오라클의 ‘돈줄’이 막힐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이는 비단 오라클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금리 시대에 조달한 부채로 성장 스토리를 써 내려온 많은 기술 기업에 ‘금리 인하 지연’과 ‘실적 둔화’라는 양날의 검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빚으로 쌓아 올린 AI 바벨탑은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가장 먼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옥석 가리기’를 넘어선 ‘냉각기’의 시작

오라클의 충격은 엔비디아를 비롯한 반도체와 클라우드 서비스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이는 AI 산업이 단순한 ‘기대감의 단계’를 지나 냉정한 ‘검증의 단계’로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오픈AI와 같은 특정 고객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 인프라 구축의 병목 현상, 그리고 치솟는 전력 비용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리스크가 되었다.

오라클 사태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기술의 혁신이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결국 비즈니스의 본질은 지속 가능한 재무 구조와 실질적인 수익 모델에 있다는 점이다.

뉴욕증시를 뒤흔든 이번 오라클 쇼크는 AI 광풍에 취해 있던 시장이 차가운 자본의 논리로 돌아오는 변곡점이 될 것이다.

이제 시장은 ‘누가 AI를 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AI로 살아남는가’를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다.

김창권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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