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 젊음의 불꽃과 쓸쓸한 종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음악은 사람의 가운뎃숨을 건드리고,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울리는 힘이 있다. 그러나 화려한 음표들 사이로 흐르는 그의 삶은 음악만큼 우아하지 못했다. 젊은 천재가 스스로 만든 혹은 타인이 만든 소용돌이 속에서 마침내 35세의 나이로 쓰러졌을 때, 세상은 놀랐고 질문을 남겼다. “왜 그가 죽었는가?”라는 질문은 오늘까지도 완전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여러 가설과 인간적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빚과 사교, 그리고 인간적 약점
모차르트는 일찍부터 명성을 얻었지만, 돈 문제는 평생 그를 괴롭혔다. 과도한 생활비, 사교계의 요구, 그리고 때때로 경솔했던 금전관리로 빚이 쌓였다. 도박에 빠졌다는 기록과 증언이 일부 존재하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몰락의 원인인지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재정적 압박이 그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부담을 주었고, 창작 환경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의 배우자 콘스탄체도 종종 ‘호화스러운 생활’로 비난받지만, 한편으로는 모차르트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그의 음악을 사후에 지키고 홍보한 인물이다. 사생활과 재정의 복합적 요인이 모차르트의 생애 후반부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죽음의 여러 가설 - 무엇이 진실일까
모차르트의 죽음에 관해 제기된 가설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범주에 속한다.
1. 전염성 질환(감염)에 의한 쇠약
18세기 후반 비엔나와 유럽 전역에는 각종 감염성 질환이 널리 퍼져 있었다. 급성열과 전신증상, 부종 같은 증상들로 미뤄 볼 때, 감염(예: 연쇄상구균성 감염)과 그로 인한 합병증이 그의 죽음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2. 신장·면역계 합병증(급성 신부전 등)
당시 기록에 남은 증상들을 통해 병리학자들은 급성 신장질환(예: 사구체신염)이나 류머티즘성 열의 합병증으로 인한 심·신장 기능 부전 가능성을 제기한다. 즉, 감염이 면역 반응을 일으켜 신장 기능을 망가뜨리고 전신 쇠약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
3. 외상·중독·타살설 등 - 근거 부족
일부에서는 수은중독, 트리키노시스(돼지고기 기생충설), 심지어 동시대인의 독살설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이런 이론들은 증거가 미약하거나 설명력이 떨어진다. 특히 정치적·감정적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타살을 결론짓기는 어렵다.
4. 생활습관·정신적 스트레스의 역할
도박, 빚, 과도한 작업과 불규칙한 생활은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질병의 악화를 촉진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스트레스 자체가 단독으로 죽음을 초래했다기보다는, 이미 진행 중인 질병을 가속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단일 원인 하나로 깔끔하게 설명되기보다 “감염성 질환에 의해 유발된 전신적 합병증(신장·심장 계열)이, 가중된 재정·정신적 스트레스와 맞물려 빠르게 진행되어 사망에 이르렀다”는 설명이 현재 가장 설득력 있다. 다만 당시의 의학기록과 사망 진단 체계의 한계 때문에 ‘확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묘지와 유해 - 빈 공동묘지의 현실
모차르트는 당대의 관습대로 ‘공동묘지’(빈곤층용 무연고 매장 방식)에 묻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비엔나의 관행은 경제성·공중위생상의 이유로 화려한 개인 묘지를 흔히 허용하지 않았고, 유명인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정확한 유해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고, 후대에 그를 추모하는 가묘들이 세워졌다. 이 ‘사실’은 모차르트의 죽음을 더욱 인간적이고 처연하게 만든다: 천재의 몸이 이내 땅속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음악은 결코 무덤에 묻히지 않았다는 역설.
음악으로 완성된 불멸
돈과 병, 인간적 약점들이 그의 삶을 뒤흔들었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그의 선율은 경쾌하면서도 심연을 건드리고, 기술적 완성도와 감정의 진실함을 동시에 갖춘다. 인간 모차르트는 연약했고 때로는 실패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인간 감정의 정교한 지도를 그려 냈다.
한 가지 바로잡고 넘어갈 것은, 베토벤과의 관계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모차르트에게 깊은 예술적 영향을 받았고, 젊은 시절 비엔나에서 모차르트를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베토벤이 모차르트의 ‘정식 제자’였다는 표현은 과장이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스승 이상의 예술적 교향으로 받아들였고, 그 영향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끝으로 의문은 남아도 감동은 명확하다
모차르트의 죽음에 관한 의문은 온전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전염병, 신장·심장 합병증, 생활습관과 스트레스의 복합적 작용 등 여러 요소가 맞물려 한 인간의 삶을 끝으로 몰아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따로 있다. “왜 우리는 그의 죽음을 두고 이토록 안타까워하는가?” 그 답은 모차르트가 남긴 음악에 있다. 그의 음표들은 시간과 운명을 초월해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그 울림이 바로 우리에게 모차르트의 삶을 기념할 이유를 준다.
천재는 완벽하지 않았고, 인간은 때때로 무너진다. 하지만 그의 선율이 우리를 데리고 가는 곳에는 늘 인간의 따뜻함과 진실이 있다. 모차르트의 삶은 한 편의 교훈이며, 그의 음악은 그 교훈을 영원히 들려주는 음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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