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같은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KLA 단체사진(뒷줄 중앙 필자)
미국 위스콘신 주 85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길게는 7.2km, 무려 50만 평에 이르는 해바라기 밭이 황금빛 파도를 이루며 끝없이 펼쳐진다. 이 장관은 그저 자연의 선물이 아니다. 한 남자의 지극한 사랑과 희망이 뿌리내리고 꽃이 피어 이룬 결과물이다.
이 해바라기 밭의 주인공은 ‘돈 재키시(Don Jaquish)’. 2006년, 그는 아내 바베트가 혈액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단 두 달. 남편에게 주어진 시간은 절망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짧았고, 사랑을 포기하기엔 더 짧았다. 그는 절망 대신 희망을 택했다.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해바라기를 집 주변에 심기 시작한 것이다. 작은 화분 하나에서 시작된 심기는 밭으로, 밭에서 또 다른 밭으로 번져 나갔다. 그 시간은 곧 남편이 아내와 함께 살기 위해 버텨낸 시간이었다.
기적은 그렇게 피어났다. 두 달이라던 시간이 9년이 되었고, 그 9년 동안 해바라기는 계속해서 아내 곁에 피어 있었다. 2014년 11월, 바베트는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남편은 그녀를 떠나보내지 않았다. 아니, 떠나보낼 수 없었다.
그는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아내가 좋아하던 해바라기를 심었다. 그렇게 해바라기는 점점 더 넓어져 50만 평의 들판을 채웠고, 그 수익금은 암 연구와 항암 치료가 필요한 이웃들을 돕는 데 쓰이고 있다. 사랑이 사랑을 낳고, 희망이 희망을 이어가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아내 바베트는 마지막 편지에서 이렇게 남겼다.
“당신은 진정한 사랑이자 친구였어요. 난 결코 멀리 있지 않을 거예요.”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넘어서 닿는 이 마디는, 사랑이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해준다. 사람들은 종종 사랑을 크기와 무게로 측정한다.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 얼마나 희생했느냐, 얼마나 표현했느냐로 사랑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숫자나 범위를 초월하는 것 아닐까. 7.2km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고, 50만 평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 진심이다.
돈 재키시가 보여준 것은 “사랑이란 끝까지 남아 있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상대가 곁에 있든, 떠났든, 그가 남긴 따뜻함을 삶 속에 이어가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주는 것, 이것이 곧 사랑의 최종 형태일 것이다.
우리 모두 마음속에 해바라기 밭을 만들 수 있다. 즉, 누군가를 위해 희망을 심고, 기다림을 물 주고, 추억을 햇살처럼 비추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우리의 마음에서도 금빛 파도가 일렁이고 있을 것이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넓고 가장 오래 남는 풍경이다. 가장 소박하게 시작해도, 가장 웅장한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다.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조용히 씨앗을 뿌리는 당신에게, 그 해바라기 밭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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