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되는 건강 관련 통계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바로 '소득 수준'이 '건강 수명'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 이 수치가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간에 무려 10년에 가까운 격차를 보인다는 충격적인 현실은, 이제 빈곤이 '경제력'뿐 아니라 '생명력'까지 잠식하는 재앙이 되고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 소득이 '좋은 습관'을 사는 시대

소득 격차가 건강 불평등을 낳는 메커니즘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우선, 생활 습관의 차이에서 두드러진다. 흡연, 과도한 음주, 신체활동 부족과 같은 건강 위험 요소의 유병률은 저소득층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돈이 없으면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기에, 장기적인 건강 투자에는 소홀해지기 쉽다.

저렴하고 고칼로리인 음식에 의존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경제적인 방법이 없어 술이나 담배에 의존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좋은 습관' 자체가 일정 수준의 경제적 여유와 시간적 투자 없이는 유지하기 어려운 사치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 '치료의 격차'가 아닌 '예방의 격차'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의료 접근성의 차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제도는 기본적인 치료의 문턱을 낮추고 있지만, 소득 격차는 '치료' 이전에 '예방'과 '조기 진단'의 단계에서 발생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은 몸에 이상이 생겨도 병원 방문을 주저하거나, 고액의 정밀 검진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로 인해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기회를 놓치고, 결국 병이 악화된 후에야 의료 시스템에 진입하게 된다. 이는 개인의 고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의료비 부담을 폭증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돈 때문에 아픈 것을 참고 살다가, 결국 큰 병을 얻어 건강수명을 단축시키는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 건강 불평등, 사회 통합의 균열

건강 불평등'은 이제 단순히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 건강한 노동력의 상실은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며, 대를 이은 건강 격차는 사회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부수는 결정적인 장애물이 된다. 열심히 일해도 병들어 쓰러지면 다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구조는, 우리 사회의 통합과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근본적인 균열이다. 이제는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을 넘어, '병에 걸리지 않도록 돕는 것'에 공공의 책임을 더 집중해야 할 때다. 저소득층에게 실질적인 건강 정보를 제공하고, 운동과 영양 관리에 필요한 자원을 지원하며, 만성 질환 예방을 위한 선제적이고 맞춤형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소득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건강하게 살 권리'와 '생명을 지킬 기회'만큼은 평등해야 한다. 건강수명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단순히 의료 복지의 확대를 넘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시급한 정의의 실현이기도 하다.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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