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거장 구사마 야요이가 '땡땡이 무늬' 그린 이유는?
신작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

X
2023 프리즈서울에 전시된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일본 현대미술 대표 작가 구사마 야요이는 어린 시절 집안 탁자에 앉아 식탁보의 붉은 꽃무늬를 가만히 바라 보고 있었다. 구사마가 문득 벽과 천장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도 붉은 꽃무늬로 물들었고, 이내 자신조차 꽃무늬로 뒤덮이고 말았다. 일종의 공황장애 증상이었다.

이 정신적 혼란을 동반한 '악몽 같은 환각'은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의 토대가 됐고, 훗날 구사마를 상징하는 물방울무늬로 발전했다. 구사마에게 예술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치유의 수단이 됐다. 그는 끝없이 번지는 두려움과 불안을 물방울 무늬로 시각화했고, 이를 반복해 질서와 생명력이 넘치는 '구사마 세계'로 확장했다.

X
구사마 야요이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알에이치코리아)은 구사마를 비롯해 31명의 미술가를 소개하는 책이다. 제니퍼 패커 같은 젊은 작가부터 선사시대 조각상을 만든 이름 모를 장인까지 다양한 작가를 담았다.

저자 윌 곰퍼츠는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평론가이자 미술 전문 저널리스트다. 영국 테이트 갤러리 관장을 역임했고, 11년간 BBC에서 예술 담당 편집장으로 일했다. '발칙한 현대미술사'와 '발칙한 예술가들'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예술가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탐색한다. 예술가들이 걸작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집요하게 바라봤는지 추적하고 이를 기록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예술가가 보는 법을 탐구함으로써 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풍요롭게 하는 책"을 쓰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X
라이트룸 서울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몰입형 전시 [연합뉴스 자료사진]

책은 가장 인기 있는 생존 작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에서 시작된다. 그의 작품 '봄의 도래, 이스트 요크셔 월드게이트'를 보면 나무가 보랏빛을 띠고 있다. 저자가 호크니에게 왜 나무색이 보라색이냐는 묻자 호크니는 "당신은 제대로 보지 않았다"며 "무언가를 더 오래 살펴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크니의 말처럼 저자는 숲에서 오랫동안 나무를 바라봤고, 햇빛을 받은 나무가 호크니의 그림처럼 색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호크니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을 체험한 것이다.

저자는 "보지 못 한 것을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것이 많은 예술가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며 "우리가 우리의 세계를 어떻게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고 말했다.

주은정 옮김. 424쪽.

X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aecorp@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