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너무 예뻐 눈 못 떼" vs "중국옷 같아"
샤넬·프라다·구찌…SNS서 '명품 AI 한복' 화제
"고급스럽다" vs "변형이 심하면 한복 같지 않다"
동정·깃·소매 등 국적 불명 요소 뒤섞이며 논란
"전통한복의 형태 명확히 설명하고 정리해 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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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Fanta-Heal' 영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최혜정 인턴기자 = ## 프라다의 삼각 로고가 새겨진 검은색 저고리를 입은 모델이 런웨이 무대로 들어선다. 이어지는 무대에서는 구찌의 GG 엠블럼과 시그니처 스트라이프가 얹힌 화려한 비단 한복이 스포트라이트 아래 모습을 드러낸다.
## 구찌 특유의 빨강·초록 색상 조합의 허리끈을 매고 'GUCCI'가 적혀 있는 치마를 입은 모델이 꽃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이어 루이비통의 로고 모노그램이 새겨진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모델이 런웨이 무대를 가로지른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전통 한복에 글로벌 명품의 정체성을 덧입힌 '명품 한복' 영상의 장면들이다.
제작자가 인공지능(AI)으로 만든 결과물이라고 밝힌 이 가상의 한복들은 독특하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수백만회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이러한 '명품 AI 한복' 영상은 지난해 초 처음 등장한 후 인기리에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한복이라 하기엔 어딘가 어색하다. 깃이 사라져 정장에 가까운 저고리, 지나치게 짧은 상의 등 전통 한복 형태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예쁘다" 등 긍정적 반응과 함께 "중국옷 같아지는 것 같다" 등 전통과 멀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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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world_ai_explorer' 영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21일 현재 유튜브·틱톡 등에 '명품 AI 한복'을 검색하면 수백 개의 영상이 뜬다.
지난 9월 유튜브 이용자 'Dre***'가 올린 'K-한복의 세계화, 명품 브랜드와의 콜라보' 영상은 업로드 두 달 만에 조회수 870만여 회, 댓글 2천여 개를 기록했다. 영상에는 에르메스, 프라다, 디올, 구찌 등 내로라하는 브랜드들과 협업한 한복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의류학을 전공한 조환희(24) 씨는 "19세기와 21세기가 합쳐진 느낌"이라며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조합이라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진다"고 평했다.
대학생 유모(25) 씨는 "AI가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니 신기하다"며 "색이나 패턴이 예뻐서 눈이 즐겁다"고 말했다.
댓글에는 "다 예뻐서 몇 번을 보는지"('정현***'), "프라다 콜라보가 현실적으로 제일 예쁘네"('swe***'), "진짜 우리나라 한복이 이러면 서로 입고 다니려고 하지 않을까"('하늘아***') 등의 호응이 이어졌다.
다만 "고유한복은 고유한복으로 남아 있기를요. 고유한복 자체가 아름다워서 무엇을 더 보탤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여겨지네요"('Moo***'), "프라다, 샤넬은 한복 컨셉이란 말 안 붙이면 한복 느낌은 거의 없네요"('use***'), "점점 변해가네"('나라사***') 등 비판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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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Dream4U-officialkorea' 영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웨딩 한복의 명품 컬래버 영상도 인기다. 지난 10월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280만여 조회 수를 넘겼다.
하얀 한복 치마 위로 샤넬 특유의 흰 트위드 재킷 스타일의 상의, 금사 자수, 화려한 문양을 담은 구찌 풍 한복 드레스 등을 입은 모델이 나온다.
댓글에는 "샤넬 트위드 자켓이랑 한복이 너무 잘 어울린다"('구슬***'), "에르메스 고급스럽다 진짜"('kym***'), "진짜 저렇게 만들어 봐도 너무 아름답겠어요"('ULV***') 등의 반응이 달렸다.
그러나 변형이 심해 전통 한복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누리꾼 'iri***'는 "한복의 기본은 깃, 고름, 옷소매인데 변형이 심하면 한복 같지가 않다", '쌍**'는 "뭔가 중국옷 같아지는 듯"이라고 썼다.
또 '미미***'는 "다 예쁘긴 한데 한복도 점점 중국화 되어가네요. 정통 한복은 아닌 듯"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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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이용 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러한 비판은 AI의 학습 데이터가 전통 한복의 형태와 장식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9월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Adobe)가 운영하는 AI 이미지 기능에서 '한복'(Hanbok)을 검색할 경우 일본식 의상이 다수 노출되는 오류가 발견돼 논란이 일었다.
이에 서경덕 창의융합학부 교수는 어도비 본사가 운영하는 여러 SNS 계정에 항의 메일을 보내 "이는 명백한 오류이자 왜곡"이라며 시정을 촉구한 바 있다.
앞서 지난 2월에는 사이버상에서 AI가 수집하는 일부 데이터가 한국에 대해 왜곡된 정보를 확산하는 통로로 변질해 문화와 영토 주권까지 위협하는 상황을 알리는 '2025년 국가브랜드업 전시회'가 열렸다.
대표적인 왜곡 사례에는 한복이 포함됐고, 해당 전시회는 AI 검색 정보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바로 잡는 일의 중요성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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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aianibot' 영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AI 한복만이 문제가 아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경복궁 나들이에서 대여해 입는 한복도 국적불명 논란에 휩싸인 지 오래다.
관광객들이 주로 고르는 것은 전통 한복이 아닌 화려한 금박과 시스루 소재를 더한 '퓨전 한복'으로, 전통과 동떨어진 디자인이 확산하자 정체성 훼손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2018년 종로구청은 '국적 불명' 수준의 한복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종로구에는 4대 궁궐 중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위치해 있다.
또 2024년에는 최응천 당시 문화재청장이 "경복궁을 찾는 많은 관광객이 한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지만, 실제 한복 구조와 맞지 않거나 '국적 불명'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더 이상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고, 퓨전 한복은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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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흐려도 관광은 해야지"…경복궁에 한복 입고 모인 외국인 관광객들 (서울=연합뉴스) 최혜정 인턴기자 = 지난 9월 4일 흐린 날씨에도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경복궁을 관람하고 있다. 2025.11.22
전문가들은 AI의 창작 영역은 존중하면서도, 전통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황이슬 리슬 대표 디자이너는 "AI로 명품 한복을 만드는 것은 창작의 자유의 영역"이라며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가상의 영역을 보여 줌으로써 보는 사람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AI가 발전하는 만큼 한복을 제대로 인식하게 하는 작업은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직물, 전통 문양 등 한국 전통 형태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본다"고 제언했다.
이상은 세계전통복식문화연구원 원장은 "외국 브랜드가 한국풍 디자인을 하는 것이 유행하는 것이 반드시 반길 일은 아니다"라며 "우리 전통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이어 "AI가 만든 그림은 정확할 수 없다"며 "전통 한복의 형태를 명확히 설명하고 정리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박후근 한국한복진흥원 원장은 "헌법에도 전통문화 계승 의무가 규정돼 있다"며 "그렇다고 변형을 법으로 막기보다는 전통 한복의 형태를 꾸준히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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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Dream4U-officialkorea' 영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haem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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