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조중동 e뉴스 김명수 발행인과 함께하는 필자


대한민국 교육이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1994년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지난 32년간 우리 사회가 ‘공정성’과 ‘표준화’라는 이름으로 지켜온 교육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제도가 더 이상 시대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부정할 수 없다. 수능은 한때 교육의 신뢰를 지탱한 제도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혁신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제는 수능의 전면 개편을 국가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

수능은 더 이상 미래 인재를 선별하지 못한다

AI와 데이터가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 우리가 길러야 할 인재는 정답을 잘 맞히는 학생이 아니라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해결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수능은 여전히 ‘한 날, 한 번의 시험’으로 학생의 능력을 재단한다. 창의력과 사고력을 종이 위의 객관식 문항으로 가늠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1990년대식 시험으로 2030년대의 인재를 뽑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식의 양이 아닌 사고의 깊이, 정답의 정확성이 아닌 해석의 다양성이 중요한 시대에, 수능은 미래형 인재를 길러내기보다 과거의 학습 습관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공교육은 수능의 그늘에서 시들어가고 있다

오늘날 학교 교육은 ‘수능 대비 훈련장’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교사는 창의적인 수업보다 문제풀이 중심의 교육에 매달리고, 학생들은 스스로 배우는 즐거움보다 점수 경쟁에 내몰린다. 선택과목 제도조차 학생의 적성과 흥미를 반영하기보다 ‘유리한 과목’을 찾기 위한 전략으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교실은 말라가고, 교육의 본질은 퇴색했다. 교사는 평가 기준에 맞춰 수업을 조정하고, 학생은 탐구 대신 암기에 몰두한다. 공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이 수능 중심 체제 아래에서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공정성’의 이름으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제도

수능이 공정하다는 말은 이제 설득력을 잃었다. 상위권 학생의 N수 비율 증가는 이미 제도의 불평등성을 드러내고 있다. 사교육은 수능의 난이도에 맞춰 과열되고, 지역과 학교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단 한 번의 시험이 공정을 보장한다’는 논리는 현실을 외면한 신화에 불과하다. 출발선이 다르고, 교육 자원이 불균형한 사회에서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을 결정짓는 방식은 공정이 아니라 차별의 제도화다. 진정한 공정성은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적 개입에서 비롯된다. 시험 한 번으로 운명을 가르는 방식에서 공정은 자랄 수 없다.

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사회를 위한 포럼에서 열변을 토하는 필자


세계는 바뀌고 있는데, 한국만 멈춰 있다

핀란드, 싱가포르, 영국 등 교육 선진국들은 이미 미래형 평가로 전환했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 포트폴리오 평가, 장기간 수행평가 등은 학생의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평가하는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20세기형 객관식 시험에 국가 교육을 의존하고 있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멈춰 서 있는 나라는 결국 뒤처진다. 교육은 단순히 대학 입시를 위한 과정이 아니라, 미래 사회를 이끌 인재를 키우는 국가의 기반이다.

수능 개편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다

수능 전면 개편은 더 이상 교육계의 주장이나 일부 전문가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절박한 명령이다. 이제 우리는 지식 암기에서 역량 중심으로, 사교육 의존에서 공교육 신뢰로, 단일 시험에서 다차원 평가로, 분절적 학습에서 통합적 학습 생태계로 나아가야 한다. 32년의 시간은 수능이 기여한 만큼 충분히 존중받았다. 그러나 미래의 30년을 1990년대의 제도로 버틸 수는 없다.

미래를 향한 용기, 그 첫걸음은 수능 개편이다

대한민국 교육이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을 다하려면, 수능을 넘어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제도의 안정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더 이상 수능은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시험이다. 수능 전면 개편은 단순한 제도 변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이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결단의 순간이다.

류수노 총장

(본 칼럼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조중동e뉴스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합니다. 본 칼럼이 열린 논의와 건전한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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