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투쟁에 나서지 않은 자, 공천하지 않겠다”라는 발언은 공천권의 사유화라는 위험한 징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공천은 본디 공천관리위원회의 독립적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당대표가 이를 좌지우지하려는 듯한 언동을 보인다면 이는 곧 민주주의 절차의 중대한 훼손이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자유의 가장 큰 위협은 권력이 특정 집단의 손아귀에 집중되는 것”이라 경고했다. 공천권이 충성 경쟁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정당은 국민의 공공재가 아니라 계파 권력의 사유물이 되고, 이는 토크빌이 경계한 ‘소수의 전제’에 다름 아니다.
야당의 거리 투쟁은 민주당 정권의 전횡과 탄압에 대한 저항이라는 맥락을 지니지만, 그 참여 여부가 공천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로크가 강조했듯, 권력의 정당성은 오직 ‘동의(consent of the governed)’에서 비롯된다. 지도부에 대한 충성도가 공천의 기준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국민적 동의는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한다.
여당 역시 자유롭지 않다. 민주당은 ‘내란 특별재판부’라는 위헌적 장치를 추진하며 사법부를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뭐라고’라는 민주당 당대표의 경박한 언사는 예의 없는 시건방진 표현이다.
대법원장을 압박해 사실상 퇴진을 강요하고, 위헌적 요소가 농후한 검찰개혁을 강행하여 수사 기능을 무력화하는 것은 법치의 토대를 흔드는 심대한 도전이다. 아렌트가 경고했듯, “법은 권력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제어하는 질서”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법은 권력의 도구가 될 뿐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헝가리 오르반 정권은 집권당 공천을 철저히 지도부의 충성 기준으로 삼고, 동시에 헌법재판소와 사법부를 장악함으로써 ‘비자유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폴란드 역시 사법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대법관 인사권을 장악해 유럽연합(EU)으로부터 민주주의 후퇴 경고를 받았다. 터키의 에르도안 정권 또한 여당 공천을 철저히 충성 경쟁의 장으로 만들고, 동시에 사법부를 권력의 수족으로 전락시켰다. 그 결과는 정치적 반대파 탄압과 권력의 영속화였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 정치가 보이는 양상은 단연코 사소하지 않다. 공천권 사유화와 사법부 장악 시도는 세계 민주주의 퇴행 국가들이 걸어온 동일한 궤적이다. 민주주의는 제도와 절차가 무너지는 순간 순식간 ‘빈껍데기’만 남는다.
해법은 자명하다.
첫째, 공천권 남용을 제도적으로 봉쇄해야 한다. 공천 과정은 전면 공개하고, 국민 참여 경선제와 공천관리위원회의 독립성이 확실히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할 장치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별재판부와 대법원장 흔들기를 금지하고, 법률로 사법부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위헌적 성격이 농후한 검찰개혁은 반드시 재검토되어야 한다. 검찰의 수사 기능은 권력형 범죄를 억제하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파제다.
정치는 권력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당 공천도, 사법부도, 검찰 제도도 모두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정치는 여·야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고 있다. 공천 사유화와 사법 장악, 이 쌍두마차가 질주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결국 헝가리나 터키의 전철을 밟고 말 것이다.
국민은 더 이상 기만당하지 않는다. 아렌트의 말처럼, “정치적 자유는 공적 공간에서 함께 말하고 행동할 때만 살아 있다.” 국민은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종국에는 정권과 야당 모두를 향해 차갑고 냉혹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고무열 한남대 교수
안전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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