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독립운동에 조선어연구회 한글날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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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한글날 경축 시민행진 펜 일러스트 [독립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조중동e뉴스 임학래)
일제강점기 암흑 속에서도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내고자 했던 조선어학회의 숭고한 정신이 10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됐다. 국가보훈부는 30일, 본격적인 국어운동의 서막을 연 조선어학회의 '한글날 제정'을 '이달의 독립운동'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글날이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맞서 싸운 치열한 독립운동의 산물임을 재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한글날의 역사는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훈민정음 반포를 기리기 위해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 전신) 주도로 '가갸날'이 제정된 것이 그 시초다. 이후 1928년 '한글날'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1940년 훈민정음 원본 발견으로 반포 시점이 1446년 음력 9월로 확인됨에 따라 광복 후인 1945년 10월 9일로 확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 우리 선조들에게 한글의 가치를 되새기고 지키는 것은 민족적 자존심을 바로 세우는 일과 같았다. 1896년 독립신문이 사설에서 "한문보다 백배가 낫고 편리한즉 내 나라에 좋은 게 있으면 그것을 쓰는 것이 옳다"고 역설한 것처럼, 한글의 우수성을 확인하는 것은 곧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핵심적인 투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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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표준어 사정위원회 1독회 종료 후 현충사 참배한 조선어학회 [한글학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결성한 조선어연구회는 이러한 시대적 사명 속에서 한글 연구와 보급에 매진했다. 이들의 노력은 1926년 '가갸날' 제정으로 첫 결실을 보았고, 이후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심해지는 와중에도 1933년 '한글마춤법통일안', 1936년 '조선어표준말모음'을 발표하며 우리말의 과학적 체계를 확립해나갔다.
하지만 우리말을 지키려는 노력이 거세질수록 일제의 탄압 역시 극심해졌다. 일제는 1936년 표준어사정안 발표회를 마지막으로 조선어학회가 주최하는 모든 집회를 금지했으며, 1937년부터는 한글날 기념식조차 열지 못하게 했다. 급기야 중일전쟁 이후에는 민족운동을 이유로 이윤재, 최현배 등 학회 주요 인사들을 투옥하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조직을 강제 해체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모진 탄압 속에서도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사전 편찬 사업을 멈추지 않았다. 말과 글을 지키는 것이 곧 민족의 혼을 지키는 길이라는 굳건한 소명 의식 때문이었다.
보훈부 관계자는 "한글날은 세종대왕의 위업을 기리는 날인 동시에,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을 지켜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려 했던 선조들의 숭고한 뜻이 담긴 날"이라며 "이번 선정을 통해 한글날에 깃든 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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