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열 박사의 송곳 칼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현실의 선거는 이 선언을 수차례 배반을 반복해 왔다. 선거철이면 국민의 주권은 흔들리고, 민주주의는 스스로 희화화한다. 정당 맹신, 지역주의, 증오 확산, 가짜뉴스 소비가 뒤엉킨 선거 풍토는, 사회적 합의의 장이라기보다는 불신과 기만의 무대로 난장판이 됐다.
일부 유권자들의 태도는 특히 충격적이다. 평생 특정 정당을 충성스럽게 지지했다고 자신의 소신 없음을 자랑이라도 하듯 “내가 지지하는 정당 후보라면 똥 막대기라도 찍는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선거문화를 흐리는 저렴한 자화상이다.
특정 정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행태는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노예적 복종이며, 그 결과 나쁜 유권자가 나쁜 후보를 만들고, 나쁜 후보가 다시 나쁜 정치를 재생산하는 악순환을 부추긴다. 정치가 퇴행하는 배경에는 언제나 이런 맹목적 선택이 자리하고 후보자는 교묘히 부추긴다.
후보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책과 비전 대신 상대 후보의 흠집을 파헤치는 네거티브 전략이 판을 치고,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 남발되며, 당선 후 약속은 쉽게 잊힌다. 국민을 속이고 민주주의를 기만하는 정치 풍토가 관행으로 굳어진 사회에서는 지도자의 책임감도 희박해진다. 정치인은 사기꾼처럼 행동하며, 권력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정당화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의 선거제도를 확 바꿔야 한다. 제도적 장치의 변화가 없으면 정치를 혐오하는 유권자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공약 검증은 형식에 그치고, 사실확인은 언론사의 재량에 맡겨져 있으며, 공약 이행률은 관리되지 못한다. 후보자 토론회는 요식 행사로 전락한 지 오래다.
반면 해외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독일은 정책 비교 플랫폼으로 유권자의 합리적 판단을 돕고, 스웨덴은 치열한 토론을 통해 후보의 비전을 검증하며, 캐나다는 가짜뉴스를 법으로 강력히 규제한다. 제도적 장치가 갖춰진 곳에서야 정치인은 허황한 약속을 함부로 내뱉지 못한다.
선거를 둘러싼 현실은 참담하지만, 책임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만 있지 않다. 유권자, 후보자, 제도 모두가 상호작용을 하며 민주주의를 짓밟는다. 유권자의 성숙도는 선거 결과를, 후보자의 책임감은 정책의 질을, 제도의 완성도는 정치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한다. 어느 한쪽이라도 결함이 있으면 민주주의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다가오는 내년 6.3 지방선거는 단순한 투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성숙을 시험하는 관문이다. 선거가 반복되는 동안에도 정치적 책임감과 제도적 성숙이 동반되지 않으면, ‘증오와 기만의 굿판’ 속에서 국민과 정치 모두가 고통을 반복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수준은 결국 국민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각성 없는 유권자는 스스로를 배신하고, 기만을 묵인하는 사회는 미래를 갉아먹는다.
정치의 퇴행은 우연이 아니다. 제도의 허점, 후보자의 무책임, 유권자의 맹목적 선택이 맞물리면서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다. 이를 방치하면 선거의 의미는 왜곡되고, 정치적 신뢰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무너진다. 민주주의는 자연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감시와 평가, 검증과 교육이 뒤따를 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똥 막대기라도 찍는다”라는 풍조가 반복된다면, 대한민국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가 아니라 영원한 수치의 장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국민과 후보, 제도 모두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민주주의의 진면목을 확인할 기회인지, 아니면 또 한 번의 퇴행을 기록할 것인지는 우리 사회 전체의 성숙도와 각성에 달려 있다.
다가오는 6.3 지방선거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생사를 가르는 시험대다. 만약 우리가 또다시 눈감고 외면한다면, 대한민국의 선거는 영원히 “증오와 기만과 가짜의 굿판”으로 남을 것이다.
고무열 한남대 교수
안전교육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