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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앞둔 '정상회의장' 경주화백컨벤션센터 (경주=연합뉴스)경주 APEC 정상회의장으로 쓰이는 경북 경주시 화백컨벤션센터(HICO) 전경.

[조중동e뉴스 = 임학래기자]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세계무역을 떠받쳐온 자유무역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는 가운데, 이번 회의가 다자주의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지가 국제사회의 최대 관심사다.

트럼프 재선, 다자주의의 위기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은 이번 정상회의의 최대 변수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고율 관세와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강화하면서, APEC이 전통적으로 지향해온 다자무역체제 지지는 큰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이 공동선언의 핵심 문구를 거부할 경우, 다자주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문제는 이 충돌이 단순히 미·중 양국의 힘겨루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컨센서스(만장일치) 원칙에 따라 단 한 나라의 반대만으로도 선언 채택이 무산될 수 있는 APEC의 구조가 이번에도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18년 트럼프 1기 당시, APEC은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선언 도출에 실패하는 불명예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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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2025 통상장관회의 (서귀포=연합뉴스) = 15일 오후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PEC 2025 통상장관회의 개회식에서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한국의 ‘중재자 외교’를 넘어

이 같은 위기 속에서 의장국 한국의 역할은 단순한 중재자에 머물 수 없다. 대립하는 회원국을 조율하는 수준을 넘어, APEC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해결할 ‘새로운 국제 협력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인공지능(AI) 협력 ▲인구구조 변화 대응을 새로운 의제로 제시할 계획이다. 이는 미·중 갈등의 틀을 넘어 회원국들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 아젠다로, 한국이 국제 협력의 방향을 주도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다자주의 회복의 시험대

전문가들은 이번 경주 APEC이 단순한 정상회담이 아니라, 다자무역질서 회복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라고 지적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주요국의 정책 기조가 ‘자유무역 확산’에서 ‘자국 우선주의’로 전환되며 APEC 합의가 구조적으로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공동선언 도출에 실패한다면, APEC의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반대로 한국이 회원국들의 공통분모를 이끌어내고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낸다면, 다자주의의 위기를 돌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 외교, 진짜 무대에 서다

경주는 단순한 회담 장소가 아니다. 보호무역주의 확산, 미·중 전략경쟁, 글로벌 위기 대응의 교차점에서 한국 외교가 시험대에 서는 자리다. 한 외교 전문가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때”라며 “이번 회의가 다자주의를 재확인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가올 10월 31일, 세계는 경주를 주목할 것이다. 이번 회의가 또다시 불발의 역사를 반복할지, 아니면 다자주의의 가치를 되살리는 무대가 될지는 한국 외교의 손에 달려 있다.

정부는 이번 APEC에서 인공지능(AI) 협력과 인구구조 변화 대응이라는 의제를 새롭게 제시하고 논의를 주도하려 하고 있다. APEC이 마주한 '미래 도전'에 초점을 맞춘 이들 의제가 회원국들의 공감대를 끌어낼 새로운 촉매가 될 수 있을지도 관심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