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정신의 계승과 대동 세상에 대한 염원
『오월의 미소』(창작과비평사, 2000)는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된 내란 목적 살인행위에 대한 역사적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대통령 후보들이 정치 논리로 화해를 이야기하고 있던 당대의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는 소설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화해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평화로운 세상이 올 수 있는가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정찬우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재수생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역사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첫사랑 미선의 언니인 영선이 공수부대원에게 겁탈을 당하고 이웃들이 살해당하면서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항쟁에 참여한다. 복수심에 불타 공수대원을 칼로 찌르고, 실수로 생머리의 여자에게 총을 쏘았다. 찬우는 자신의 행위에 죄의식을 안고 살아간다. 아이를 낳고 악몽에 시달리는 영선을 돌보면서 미선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다. 두 사람은 5.18민주화운동으로 형성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영선은 세상을 저주하다가 바다에 몸을 던져 아이를 남겨둔 채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피해자는 시민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수대원들도 피해자다. 그들은 악몽에 시달리면서 정상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낸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 장교였던 김성보는 악몽에 시달리다 자살인지 모를 익사 사고를 당한다. 죄의식 없이 살아가는 하치호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었던 김중만의 응징으로 쇠파이프에 맞아 죽는다. 정찬우는 김성보의 죽음을 목격하고 하치호의 죽음을 풍문으로 듣고 증언하고 있다. 영선과 김성보는 저승혼사굿으로 맺어진다. 그들의 결합은 피해자와 피해자의 결합이다.
5.18민주화운동의 가해자는 누구인가? 작가는 내란의 우두머리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라고 보았다. 대통령 후보들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지 않은 내란의 우두머리 전두환을 석방하고 사면하겠다고 했다. 광주시민들이 제기했던 문제를 외면하고 과거를 덮으려고만 했다. 그것은 백범 암살범의 처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작가는 박기서가 나서서 안두희의 죄를 물었듯이 누군가가 나서서 전두환의 죄를 물어 응징해야만 정의 사회가 구현되고 대동 세상이 올 거라고 보았다.
작가는 당대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와 거리가 있다고 보았다. 기득권층은 힘 있고 부유한 자들이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 반면에 그들에게 짓밟히고 고통을 당하는 주변인들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주변인들은 개별적으로 현실에 정면으로 대결하거나 정의를 부르짖을 힘이 없다. 기득권층과 주변인들의 대립은 결과가 눈에 보이고, 부질없는 일로까지 여겨진다. 그러나 주변인들은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과 불굴의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극한 상황에 처해서는 동학운동에 참여했던 농민들이 그러했듯 서로 뭉쳐 목숨을 내놓고 항쟁할 수 있다. 작가는 5.18민주화운동이 동학혁명이나 항일투쟁의 연장선에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정찬우는 5.18민주화운동의 트라우마를 딛고 미선을 만나기로 다짐한다.
2000년 전남대 임한모 교수가 송기숙 교수의 정년 퇴임 기념논문집에 수록할 송기숙 작품에 관한 논문을 청탁했다. 당시 나는 『백의민족』과 『암태도』 그리고 『자랏골의 비가』를 가지고 있었다. 『백의민족』은 73년 대학 재학시절에 구매한 책이었고, 『암태도』는 1981년 중흥동 성기준의 자취방에 갔다가 옆에 세든 해직 교수들의 사랑방에서 송기숙 작가로부터 받은 책이었다. 『자랏골의 비가』는 80년대 후반 서점에서 구매한 책이었다. 논문 청탁을 수락하면서 송기숙 작가의 작품을 일부만 가지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임 교수는 일부는 복사까지 해서 모든 작품을 보내주었다. 송기숙의 작품을 읽고 「송기숙 문학의 세 갈래와 저항문학적 성격」을 작성하여 정년기념 단행본인 송기숙의 문학세계(태학사, 2001)에 수록했다. 2007년에는 KBS 광주방송국 관계자가 나의 연구실에 찾아와서 송기숙 관련 영상을 촬영하여 11월 「장흥, 문향을 꿈꾸다」(KBS 문학다규멘터리)에 편집하여 방영하였다. 2010년 7월 김선욱 집행위원장의 초청으로 장흥 정남진에서 열린 제2회 전국문학인대회에 장부일 최학출 박옥걸 윤정룡 이희규 전기철 임한모 등과 참석하여 「「자랏골의 비가」에 나타난 근대성 연구」를 발표하였다. 고문 후유증으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송기숙 작가는 고은, 백낙청, 이호철, 한승원, 이희규, 송현호, 전기철 등을 알아보지 못하고 초점 잃은 눈으로 사모님 옆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그것이 송기숙 작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송기숙 작가는 우리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지식인이며, 현실 문제에서 제삼자의 관점을 거부한 작가이다. 동학도의 후예답게 불의에 항거하면서 한평생을 살아왔다. 1978년 교육 민주화 선언문을 발표하여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4년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수습위원으로 활동하였고, 해직 교수로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송기숙의 소설에는 정의 사회 구현과 대동 세상에 대한 염원이 일상적 담론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역사성을 지닌 거대 서사로 형상화되고 있다. 작가는 문학의 비판적 기능을 활용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그릇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그는 가해자가 진솔하게 사과하고 피해자가 용서하여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는 평화로운 세상, 동학도들이 염원했던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대동 세상을 염원하다가 오랜 투병 끝에 2021년 생을 마감했다.
핑자 송현호 아주대 명예교수
송현호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아주대 인문대학장, 절강대 교환교수, 서울대 객원연구원, 연변대 교환교수, 중앙민족대 석학교수, 길림대(주해) 체류교수, 남부대 석좌교수, 문학평론가협회 국제이사, 학술단체총연합회 이사, 한국현대문학회 부회장, 한중인문학회 회장, 한국현대소설학회 회장, 한국학진흥사업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9년 세계인명사전 Marquis Who’s Who에 등재되었다. 현재 아주대 명예교수, 한국현대소설학회 명예회장, 한중인문학회 명예회장, 안휘재경대 석좌교수, 절강월수외대 석좌교수, 무한대 한국학진흥사업단 수석연구원, 포토맥포럼 한국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