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조업 현장의 가장 큰 고통은 더 이상 인건비도, 규제도 아니다. 공장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최대의 부담은 단연 전기요금이다. 전기는 제조업의 혈액과 같다. 멈추면 공정이 서고, 흐름이 느려지면 경쟁력이 약화된다. 지금 대한민국 제조업은 바로 그 혈액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아져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분명하다. 원자력 발전의 축소와 가동 중단이다.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스스로 포기한 선택
원자력 발전은 그동안 대한민국 산업화의 숨은 주역이었다. 단위 전력당 생산비가 낮고, 기후와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으며, 대규모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를 감당해 왔다. 특히 24시간 가동되는 제조 공정에서는 전력의 안정성이 곧 품질이었고,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 기조 속에서 원전 가동이 줄어들자, 그 공백은 상대적으로 비싼 LNG 발전과 수입 에너지로 채워졌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전력 도매가격 상승, 누적된 한국전력의 적자, 그리고 그 부담이 고스란히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전가되었다.
이제는 산업을 살리는 에너지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필자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 든 중소·중견 제조기업들은 이제 생산량을 늘릴수록 손해를 보는 기이한 구조에 놓였다. 이는 기업의 경영 실패가 아니라, 에너지 정책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인도 최근에 연매출액 2,000억원되는 알루미늄휠 공장을 가동하면서 인건비 못지않게 많이 들어간 전기요금을 도저히 감당하지못하여 공장을 폐쇄한 경험을 겪었다.
제조업 공동화, 이미 시작된 경고음
높은 전기요금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공장 해외 이전, 설비 투자 위축,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실제로 전력 단가가 낮은 국가로 생산기지를 옮기려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공장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침묵과 지역 소멸의 그림자뿐이다.
제조업은 한 나라의 허리다. 허리가 무너지면 국가 경제는 결코 바로 설 수 없다. 반도체, 철강, 화학, 자동차, 배터리 산업 모두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이 산업들을 지탱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은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엄청난 전기요금을 도저히 감당하지못하여 공장을 폐쇄당한 필자
감정이 아닌 현실로, 이념이 아닌 국익으로
이제 에너지 정책은 감정이나 이념이 아니라 현실과 국익의 관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원자력은 완벽한 에너지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 기술 수준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탄소 배출이 적고, 단가가 낮으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원전은 제조업 국가인 대한민국에 반드시 필요한 선택지다.
물론 안전성 강화, 투명한 관리, 지역 사회와의 신뢰 회복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쟁국들이 적극 활용하는 에너지를 우리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지혜로운 선택이 아니다.
이제는 산업을 살리는 에너지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첫째, 기존 원전의 안전한 재가동과 수명 연장을 합리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이 필요하다.
둘째,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의 합리적 개편이 시급하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고려한 차등 요금과 장기 계약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셋째, 원전·재생에너지·가스 발전을 균형 있게 조합하는 에너지 믹스 전략을 통해 가격 안정성과 친환경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넷째,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에 현장 기업과 산업 전문가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공장을 살리는 것이 곧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전기는 단순한 공공요금이 아니다. 그것은 산업의 생명선이며,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다. 공장의 불이 꺼지면 기술도, 일자리도, 미래도 함께 어두워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를 탓하는 일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방향을 바로잡는 용기다. 제조업이 다시 힘차게 돌아가도록,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라는 기본부터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경제를 다시 뛰게 하는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다.
바람이 거세게 불수록, 뿌리가 깊은 나무는 더욱 단단해진다. 이제 우리 제조업이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에너지 정책의 토양부터 바로잡아야 할 때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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