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送舊迎新)의 문턱에서 지난 날을 돌아보는 필자
벌써 한 해의 끝자락에 섰다. 2025년 을사년의 다사다난했던 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 지나가고,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문턱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지난 날을 돌아본다.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누구와 함께 지나왔는가를 묻게 되는 시간이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스치고, 현명한 사람은 스쳐도 인연을 살려 낸다.” 이 문장은 인간관계의 본질을 단순하면서도 깊이 꿰뚫는다. 인연은 우연처럼 다가오지만, 그것을 관계로 완성하는 일은 전적으로 우리의 태도와 선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인간의 삶에서 관계란 늘 아이러니하다. 그리워하면서도 다시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잊지 못하면서도 끝내 마주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연도 있다. 가까이 있었기에 더 멀어지고, 사소한 오해 하나로 등을 돌린 관계를 떠올리면 마음 한켠이 무거워진다. 그래서 더욱 바라는 것은, 그동안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소박한 기도일 것이다.
인간관계는 거창한 약속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소한 불신을 경계하고, 작은 오해를 제때 풀어내는 성실함에서 지속된다. 우리는 종종 ‘동행’을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진정한 동행은 같은 마음으로 가는 데 있다. 속도가 달라도, 길이 달라도, 마음이 어긋나지 않는 관계야말로 오래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간직한 작은 비밀이 되어,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믿을 수 있고, 말하지 않아도 배려가 전해지는 관계. 계산 없이 주어도 아깝지 않고, 무엇을 기대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관계. 그런 관계는 소유가 아니라 존중에서 자라고, 요구가 아니라 이해에서 깊어진다. 결국 좋은 인연이란 서로의 영혼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을 줄 아는 마음의 기술인지도 모른다.
송구영신의 이 시간, 지나간 인연에 감사하고 아직 남아 있는 인연을 더욱 소중히 품고 싶다. 스쳐간 인연에서 배움을 얻고, 이어진 인연에는 진심을 더하며, 다가올 인연 앞에서는 겸손해지기를 바란다. 새해 2026년 병오년에는 더 많은 것을 갖기보다, 더 깊이 관계 맺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같은 방향이 아니라, 같은 마음으로 동행하는 한 해가 되기를 조용히 소망해 본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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