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국가의 시계는 갑작스레 느려졌다. 거리는 낯선 긴장으로 차올랐고,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에 드리워진 그 어둠의 길이를 가늠하며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계엄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국가의 무게가 개인의 삶 위에 직접 내려앉을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그러나 오늘, 그 1주년을 맞은 우리는 단지 과거의 충격만을 되돌아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한 해 동안 겪고 견뎌낸 경험을 통해 단단해진 공동체의 성찰과 질문을 품고 이 자리에 서 있다.

첫째, 진실을 묻는 일은 불편하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계엄은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 중 하나다. 그래서 그 순간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어떤 판단으로 실행되었으며, 그 과정이 투명했는지를 묻는 것은 시민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 질문은 때로 정치적 편견을 자극하고 서로 다른 기억을 부딪치게 만든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불편함을 견디는 힘으로 완성되는 제도다. 우리는 불편함을 넘어서는 용기를 선택해야만 한다.

둘째, 공포를 넘어 공동체로 가야 한다. 계엄 직후 많은 시민들이 느낀 것은 ‘두려움’이었다. 우리가 지켜온 일상이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 목소리가 잠시나마 스스로를 숨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긴장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더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두려움의 크기’가 아니라 ‘서로를 지탱한 연대의 깊이’다. 가게 셔터가 내려간 골목에서 따뜻한 음료 한 잔을 건넨 이웃,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공동체 소식을 공유하며 안심을 주던 지역 커뮤니티, 그리고 서로의 손을 잡고 “우리가 함께 버티자”고 말하던 사람들. 계엄은 공동체를 분리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공동체는 그 위기 속에서 서로를 더 단단하게 묶어냈다.

셋째, 권력의 힘보다 기억의 힘이 더 오래간다. 정치는 변하고 권력은 교체되지만, 기억은 시민의 마음 속에서 살아남아 사회의 방향을 다시 그리고있다. 계엄 1주년을 맞은 오늘, 이렇게 되새겨본다. 권력의 명령은 잠시이지만, 시민의 기억은 오래간다. 그리고 그 기억은 미래의 권력이 다시는 같은 선택을 가볍게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된다. 역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기억하는 시민은 권력의 우발적 결정을 견제하고, 질문하는 시민은 그 어떤 비상 상황에서도 민주주의의 중심을 지켜 낸다고.

넷째,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이제 1년이 지났고, 거리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아이들은 학교로, 노동자들은 일터로, 시민들은 자신의 삶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일상은 그저 돌아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낸 것이다. 그렇기에 이 1주년은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니라, 앞으로 국가가 위기 상황에서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 시민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기록이 내일의 안전이 된다. 오늘 다시 한 번 다짐해야 한다. 위기가 찾아와도 법과 절차는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어떤 강력한 조치도 투명성과 책임성을 벗어날 수 없다. 시민은 정보 접근권과 표현의 자유 속에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가장 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계엄 1주년, 우리는 오늘을 두려움의 기념일로 남기지 않았다. 대신 기억과 성찰, 그리고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향한 약속의 날로 새기고 있을 뿐이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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