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의 학원 자정 수업 허용 여부가 또다시 뜨거운 논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이 받는 심야 학원 규제가 지역마다 제각각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지역은 밤 10시면 문을 닫고, 어떤 곳은 11시까지 허용하며, 또 어떤 곳은 단속조차 형식에 그친다. 같은 나라 안에서 청소년의 건강권과 생활 리듬이 ‘거주지 복불복’으로 결정되는 현실, 이것이 과연 정상인가.
첫째, 청소년의 건강권은 지자체 재량이 될 수 없다. 수면 부족과 과도한 학습 스트레스는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서울의 아이가 더 강한 것도, 지방의 아이가 더 약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지자체별 조례에 따라 심야 학원 시간 규제가 다르게 적용되는 것은, “청소년 건강의 기준은 없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같은 학생인데 “우리 지역은 11시까지 버티는 게 당연하다”는 구조는 국가가 청소년을 정책의 중심에 두지 않았다는 증거다.
둘째, 지역별 규제는 사교육 경쟁을 더욱 키운다. 한 지역에서 규제를 완화하면 인근 지역 학부모들은 곧바로 불안을 느낀다. “남의 아이는 더 늦게까지 공부하는데,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나.” 이렇게 번지는 불안은 곧 압력으로 바뀌어 학원 운영 시간을 더 늦추고, 더 많은 수업을 요구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심야 학원 규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경쟁의 압박 때문이다. 정책의 목적은 사라지고, 비교와 조급함만이 자리를 차지했다.
셋째, 문제의 뿌리는 지자체별 조례라는 구조적 한계다. 심야 학원 규제는 청소년 보호와 직결된 사안이다. 그런데도 이를 지역 조례에 맡기고, 지자체장이 민원이나 학원 업계의 눈치를 보며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의 수면권, 건강권 같은 기본적 기준을 ‘지역 선택 사항’처럼 다루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는가. 결국 가장 보호받아야 할 학생만 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넷째, 자정 수업 찬반 논쟁은 본질을 가린다. 문제는 단순히 “12시까지 해도 되는가, 11시는 어떤가”의 문제가 아니다. 왜 청소년이 밤 12시까지 학원에 있어도 자연스러운 구조가 되었는가에 대한 이 질문을 외면한 채 시간 규정만 바꿔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공교육 신뢰의 약화, 입시 경쟁의 폭증, 사교육 의존의 고착화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규제는 몇 시든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은 증상일 뿐이고, 병은 따로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명확하다. 청소년의 건강과 수면권을 기준으로 한 전국 단일 심야학원 규제 기준을 만드는 일이다. 또한, 지역 간 경쟁을 유발하는 규제를 정비하고 정부 차원의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아울러 사교육 의존도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한 공교육 강화와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지역마다 다른 심야 학원 규제는 정책이 아니라 혼란이다. 청소년의 하루와 건강, 삶의 질이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뒤흔들려서는 안 된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오히려 정책의 빈틈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면, 그 사회는 미래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명확히 말해야 한다. 지역별 심야학원 규제 차등은 비정상이다. 청소년 보호는 전국 어디에서든 동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단 하나, 학생의 삶을 지키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것이 교육 국가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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