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라는 초헌법적 무리수를 둔 배경에 대해 면희를 온 참모에게 이같이 언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발언은 당시 대통령이 느꼈던 심리적 위기감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국가의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엄중한 결정이 통치자의 '사적 공포'에 기반했을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헌법 제77조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계엄을 허용한다. 즉, 계엄은 국가의 존립과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이러한 헌법적 명분을 무색하게 만든다.

국회가 예산안을 삭감하고 탄핵을 추진하는 상황이 정치적으로 고통스러웠을지언정, 그것이 곧 '국가의 죽음'은 아니다. 그럼에도 통치자는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국가의 위기와 동일시했고, '내가 죽을 것 같으니 계엄을 헌법 질서 위에 두겠다'는 위험한 결정을 내렸다. 이는 국가의 명분을 개인의 생존 프레임으로 떨어뜨린 통치자의 치명적 인식 오류다.

시스템을 멈춘 군대, 명분 없는 폭주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은 현장의 폭주로 이어졌다. 계엄령 선포 직후 국회로 진입한 계엄군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통행을 막고 체포를 시도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군대가 대통령 개인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私兵처럼 움직인 것이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했음에도 "내가 두 번, 세 번 선포하면 되니 계속 진행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한다. 이는 더 이상 헌정 질서 수호가 아니라, 통치권을 놓지 않겠다는 개인의 집착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안 했어도 죽었을 것"이라는 실토는 역설적으로 계엄의 부당성을 스스로 입증한다.

헌법이 부여한 계엄권은 대통령 개인의 신변 안전이나 정치적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방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통치자의 공포가 국가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책임을 면제받을 수는 없다. 오히려 사적인 심리 상태로 인해 국가의 운명을 걸고 위험한 도박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엄중한 법적,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통치권자의 인식이 헌법적 가치와 얼마나 동떨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국가에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김창권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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