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배우 이순재

- 장수 비결은 천재성보다 성실함이었다

“시청자 여러분,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2024년 데뷔 70년 만에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남긴 이순재의 마지막 인사는, 그가 남긴 수많은 명대사보다 더 깊은 울림을 안겼다. 그리고 2025년 11월 25일 새벽, 향년 91세로 그는 세상에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한 시대가, 그리고 한국 TV드라마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거대한 역사 한 장이 그렇게 막을 내렸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TV, 연극, 영화의 거의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스스로를 한국 드라마의 살아있는 역사가 되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 드라마의 역사였고, 이순재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 ‘최장’, ‘최고’라는 단어가 늘 붙어다녔다.

이순재는 캐릭터의 폭으로도, 필모그래피의 깊이로도, 꾸준함으로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배우였다. 그의 장수 비결은 천재성보다 성실함이었다.

2008년, 연극 공연 당일 새벽에 모친이 별세했음에도 그는 “연극은 관객과의 약속”이라며 무대에 올랐다. 두 번의 공연을 마친 뒤에야 빈소로 향했다. 촬영장에 가장 일찍 도착해 대본과 동선을 점검하던 배우, 연기와 강의를 병행할 때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 미안해하던 스승, 마지막 연기대상 수상 순간에도 “학생들에게 미안했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화려한 스타로 사는 것보다 한 장인으로 사는 길을 선택한 배우, 이순재였다.

평범한 개인이 평생을 바쳐 한 길을 걸을 때 그 인생은 작은 역사가 된다. 그리고 그 역사에 영혼과 치열함이 관통할 때, 그것은 신화가 된다.

이순재는 주어진 배역에, 주어진 현장에,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 한결 같은 발걸음이 모여 한국 드라마의 반세기를 만들었다. 그는 바람처럼 사라진 스타가 아니라 흔적을 남기고 떠난 장인이었다.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감사합니다.”우리는 그의 연기를 통해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보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꼈으며, 시대를 함께 건너왔다. 신세를 진 것이 우리였지만, 오히려 그가 먼저 감사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한 시대가 가는 것은 늘 슬프다.
그러나 한 시대를 이룬 사람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저작권자(c) 조중동e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조중동e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