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에 위치한 '에스 파스 반 고흐' 시립정신 병원의 정원에서 선 필자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작은 도시 아를(Arles). 이곳은 로마 시대의 웅장한 원형 경기장과 고대 유적이 그대로 남아 시간이 멈춘 듯한 역사 도시다. 하지만 오늘날 수많은 여행자가 이곳을 찾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네덜란드 출신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뜨거운 영혼이 스며든 곳이기 때문이다.

고흐는 1888년 2월, 파리의 번잡함을 떠나 따뜻한 햇살과 새로운 색을 찾아 아를로 내려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14개월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가장 격렬했던 예술적 불꽃을 태우며 전 생애 작품 중 5분의 1에 달하는 200여 점의 걸작을 남겼다고 한다.

고흐가 론강변을 거닐면서 그렸다는 "별이 빛나는 밤"작품 표지판을 배경으로 한 필자

눈부신 빛깔의 원천, 프로방스의 태양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를의 풍경에 대한 황홀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파랗고, 태양은 유황빛으로 반짝인다. 천상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푸른색과 노란색의 조합은 얼마나 부드럽고 매혹적인지..." 아를의 강렬한 태양은 고흐의 팔레트에 불을 질렀다. 파리에서 배웠던 인상파의 점묘법을 넘어, 그는 자신만의 역동적인 붓질(임파스토)과 원색의 대담한 대비를 완성한다. "아를의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곧 고흐의 캔버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경험과 같다"고 한 가이드의 설명처럼 도시 곳곳에 고흐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를 원형 경기장 앞에선 필자

'밤의 카페 테라스(Café Terrace at Night)' 속 노란색 카페는 지금도 '카페 반 고흐'라는 이름으로 레퓌블리크 광장 근처에서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지만,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법적 소송으로 폐업 중이라 아쉬웠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Over the Rhône)'을 그렸던 론강(Rhône) 변을 거닐면, 강렬한 가스등 불빛과 대비되는 밤하늘의 푸른색과 별빛을 상상하게 된다.

' 빈센트 반 고흐' 간판만 남아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앞에 있는 필자

고흐가 머물렀던 숙소의 평온함이 느껴지는 '아를의 방(The Bedroom in Arles)'의 모델이 되었던 장소와, 고갱과의 다툼 이후 스스로 귀를 자른 뒤 입원했던 옛 병원(Espace Van Gogh)의 노란 회랑은 그의 고독과 열정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고대와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 아를은 고흐의 영혼뿐만 아니라, 2000년 로마 역사의 발자취가 곳곳에 새겨진 도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를 원형 경기장(Arènes d'Arles)과 고대 극장은 고흐가 그림을 그릴 당시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를 市廳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필자

고흐는 이러한 불변의 유적지 옆에서 현대 예술 공동체에 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비록 그가 염원했던 '남부의 화가 공동체' 실험은 고갱과의 불화로 비극적인 결말로 끝났지만, 아를은 고흐의 예술적 시련과 성장을 담아낸 도시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의 삶은 비극으로 끝났을지라도, 그가 남긴 눈부신 색채는 여전히 아를의 태양 아래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김창권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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