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은 거의 없다. 오히려 믿었던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배신당하며 살아온 세월이 더 많았다. 정의감이 강했던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을 너무 믿었던 것’이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 손을 내밀었지만, 그 손길이 이용당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결국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히며 수없이 무너지고, 상처를 품은 채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저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일 뿐이다. 젊은 시절,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고통은 끊이지 않았다. 입사 초기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이 이어졌고, 측은지심에 돈을 내주었다가 그 빚을 갚기 위해 죽을 듯이 뛰어야 했다. 회사 일 외에도 과외, 학원 강의, 각종 부업까지… 쉼 없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남들이 휴가를 즐길 때 나는 일했고, 주말조차 사치였다. 그렇게 청춘의 모든 시간을 ‘버티기 위해’ 쏟아부었다.

하지만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고단한 시간을 견디며 달려온 덕분에, 나는 어느새 노동법 분야의 1인자가 되어 있었다. 강의실마다 내 이름이 오르내리고, 방송에도 출연하며 자타공인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또다시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들 대부분이 나를 떠났고, 어떤 이는 배신으로 돌아섰다.

특히 내가 ‘신의 직장’이라 불리던 곳에서 경험한 일들은 지금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잡으려 하면, 누군가는 나를 짓밟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양보하면 끝내 성장의 길을 막아버렸고, 나는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때마다 포기하지 않았다. 묵묵히 견디며 다시 일어섰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왜냐하면 누구의 도움 없이, 오직 나의 의지로 여기까지 달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부탁을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언제나 혼자였다. 그럼에도 혼자였기에 강해졌고, 외로웠기에 당당해질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오늘도 국회에서 ‘서사모(서울을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고자 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내가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보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들꽃들이 메마른 땅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듯, 나 역시 그 꽃들처럼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의 비바람에 흔들려도,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존재로 남고 싶다.

내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고통의 시간은 나를 부수지 않았고, 오히려 단단하게 다듬어 주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숨 쉬는 한, 꿈과 희망을 잃지 않겠다. 그리고 내 인생이 그 증거가 되길 바랄 뿐이다.
그저 삶은 만들어가는 자의 몫이고, 미래는 준비된 자의 영광이다.

발행인겸 필자 김명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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