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과 소리,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긴장이 빚은 서스펜스의 공간

알프레드 히치콕은 1964년 자다르를 방문한 뒤,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일몰은 크로아티아 자다르에서였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자다르의 해변 앞에서 선 필자

거장의 눈을 사로잡은 건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자다르는 빛과 그림자, 고요와 긴장, 그리고 자연이 연주하는 음악이 공존하는 도시다. 그 안엔 히치콕의 영화 세계와 맞닿은 미묘한 ‘서스펜스의 미학’이 숨쉬고 있다.

자다르의 석양은 바다를 금빛으로 물들이며 도시 전체를 거대한 스크린처럼 만든다고 한다.

바이킹 크루즈호 앞에선 필자


히치콕이 즐겨 다루던 빛과 어둠의 대비,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듯한 풍경이다. 그에게 자다르는 카메라 없이도 이미 완벽한 영화 세트였다. 해 질 무렵의 자다르 해안은 ‘현실과 환상이 겹쳐지는 프레임’이자, 그가 평생 추구한 심리적 긴장의 시각적 원형이었다.


자다르 기념품가게 앞에선 필자

- 바다가 연주하는 사운드트랙, 살아있는 음악의 도시

자다르의 명물 ‘바다 오르간(Sea Organ)’은 파도에 의해 소리를 내는 건축물이다. 히치콕은 이 자연의 우연한 음악을 “신이 작곡한 서스펜스의 음향”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는 영화 속 사운드를 통해 관객의 심리를 조종하는데 탁월했지만, 자다르의 바다 앞에서는 그조차 ‘자연이 만든 음향감독’에게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자연이 연주하는 불규칙한 리듬 속에서 그는 공포와 평온이 맞닿는 순간의 미학을 발견했다.

- 고요 속의 긴장, 히치콕이 느낀 인간의 불안

자다르는 전쟁의 흔적과 평화로운 일상이 묘하게 교차하는 도시다. 히치콕이 사랑한 건 바로 이 ‘평온 속의 불안’이었다. 고요한 골목, 오래된 석조 건물, 그리고 바다 너머로 사라지는 어둠. 그는 그 속에서 인간 내면의 보이지 않는 공포를 읽어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공포다”라는 그의 신념은 자다르의 신선한 공기에 완벽히 녹아 있었다.

- 빛이 꺼진 뒤에도 남는 도시의 잔상

히치콕에게 자다르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영화와 현실이 교차하는 심리적 무대였다. 그가 자다르의 일몰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은, 아마도 ‘완벽히 조용한 긴장감’이었을 것이다.

자다르의 석양이 사라져도, 그 잔상은 히치콕의 영화 속 프레임처럼 오래 남는다. 그가 자다르를 사랑한 이유는 결국 하나, 인간의 심리를 가장 아름답게 비추는 도시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훗날 세기의 거장 히치콕은 자다르를 사랑한 3가지 이유로 황홀한 일몰을 첫번째로 꼽았다.

두번째로 체리로 담군 과일주를 증류해서 만든 역사깊은 크로아티아 名酒 마라스카의 매력있는 술내음에 취했다고 한다.

자다르가 자랑하는 名酒 마라스카


마지막으로 아침 일출을 보며 아드리아海의 둑방길을 걷는 순박한 자다르 아낙네의 모습에 또한번 흠뻑 빠젔다고 한다.

혹시 크로아티아를 여행할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히치콕이 진짜 사랑한 도시 자다르를 강력 추천해 본다. 절대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아드리아海를 따라 남쪽으로 향하는 수많은 도시가운데 에서도 자다르는 크로아티아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로마 시대의 유적과 중세 성벽, 그리고 현대적인 예술 작품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구시가 골목마다 자리한 아기자기한 카페와 미술관, 그리고 현지인들이 즐기는 시장의 활기는 관광객에게 ‘살아 있는 유럽’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히치콕이 이곳을 ‘완벽한 장면’이라 칭송했던 이유는 단지 석양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인간의 감정과 공간의 긴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감독이었다.

고풍스러운 자다르 골목길 앞에선 필자


자다르는 그에게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파동이 공존하는 무대였을지 모른다. 오늘날 자다르의 해안가에는 여전히 그가 바라본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카메라 대신 스마트폰을 든 여행자들이 저마다의 ‘히치콕의 석양’을 찍으며, 잠시 영화 속 인물이 되곤 한다고 동행했던 여행가이드는 귀뜸한다.

필자가 자다르에 도착한것은 오전인 탓에 일몰의 황홀한 광경을 느끼진 못했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크루즈와 해안을 배경으로 연이어 스마트폰을 눌러대던 모습이 지금도 선연하기만 하다.

김창권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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