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불법의 이름으로 변질된 용인 죽전 테라스&139 사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권력은 ‘돈의 권력’이다. 그 권력은 법보다 앞서고, 사람의 눈보다 빠르며, 때로는 정의의 이름조차 가려버린다.

경기도 용인의 ‘죽전 테라스&139’ 사태는 그 권력이 얼마나 거칠고 냉혹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 현장이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단순한 공사 갈등이 아니다.
새벽 어둠을 틈타 수십 명의 용역이 단지를 점거하고, 관리사무소의 문을 부수고, 입주민과 시행사의 출입을 막았다. 이 모든 일이 금융계열사인 교보자산신탁의 이름 아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충격이다. ‘신탁(信託)’이란 말의 본래 뜻은 ‘믿음으로 맡긴다’는 것인데, 그 믿음이 폭력과 강제의 이름으로 변질된 것이다.

“책임준공”이라는 이름의 무책임

시행사는 말한다. 10년 동안 피땀 흘려 쌓아온 사업이 ‘책임준공’이라는 미명 아래 하루아침에 무너졌다고.
수백억 원의 잠재적 이익이 사라진 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노력의 의미, 신뢰의 가치, 약속의 윤리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교보자산신탁(대표 강영욱)은 법적 절차와 계약의 틀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했고, 시행사는 그 틀 안에 갇혀 모든 책임을 떠안았다. 그 결과 비가 내리면 전 세대에 물이 새고,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주차장은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입주민의 안전과 삶의 질은 금융의 논리 속에서 하찮은 숫자로 취급되었다.

죽전의 새벽에 울린 분노의 절규를 표출하는 시민


금융의 힘이 현장을 지배할 때

교보자산신탁이 보여준 행태는 단지 한 건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금융권이 가진 구조적 오만의 축소판이다.
책임은 회피하면서 권한은 행사하고, 현장의 고통은 외면하면서 보고서는 미려하게 꾸민다. 이것이 바로 ‘책임준공’ 제도의 어두운 그림자다.

그 배후에는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이라는 이름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인문학적 경영’, ‘사회적 가치’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자회사에서 벌어진 폭력적 현실은 그 철학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증명한다.
리더십은 말로가 아니라 현장의 윤리로 증명되는 법이다.
그의 철학이 진심이었다면, 그 이름 아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돈보다 정의, 권력보다 양심

이 사건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금융권력의 일상화된 폭력’이다.
법과 계약을 무기로 삼아, 약자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구조.
시행사 대표가 스스로를 해치려는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는 사실은, 그 절망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업 간 분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정의의 문제다.

교보자산신탁은 그 이름에 ‘교보’라는 국민 브랜드의 신뢰를 달고 있다. 그 신뢰는 수많은 국민이 보험료로, 노후자금으로, 생명보험으로 쌓아올린 것이다.
그런 조직이 물리력과 갑질로 현장을 통제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신뢰를 배신하는 행위다.

신뢰를 되살리는 유일한 길, 책임의 실천

한국 금융권이 가진 구조적 오만으로 이루어진 축소판


지금 필요한 것은 사과가 아니라 변화의 선언이다. 교보생명과 자산신탁은 먼저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 위에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약속해야 한다.

1. 신탁업의 책임준공 제도 재검토 — 책임이 없는 ‘책임’은 이름만의 사기다.

2. 현장 갈등 시 물리력 개입 금지 원칙 — 금융기관은 돈으로 통제하되, 결코 사람을 힘으로 지배해서는 안 된다.

3. 입주민과 시행사의 권리 보호 장치 강화 — 금융은 계약 이전에 신뢰의 산업이다.

4. 내부 윤리·준법 감시의 독립성 확보 — ‘교보’의 이름이 공정과 정의의 상징으로 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감시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국감은 폭로의 장이 아니라, 바로잡는 자리다. 신창재 회장이 그 자리에서 변명 대신 책임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번 사태는 교보그룹이 다시 태어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침묵하거나 책임을 회피한다면, 그 신뢰의 붕괴는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금융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신뢰이고, 경영의 본질은 권력이 아니라 양심이다. 그 단순한 진리를 외면한 기업은, 아무리 거대해도 결국 국민의 마음에서 퇴출된다.

죽전의 새벽에 울린 분노의 함성은 한 현장의 절규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금융권 전체에 던지는 경고다. “돈으로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어도, 신뢰만은 살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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